밤이가 찾아오기 반년 전쯤에도. 슬슬 임신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막연히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내 몸에 대해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신랑과 함께 동네 산부인과를 들렀다. 산부인과에선 30만 원이 넘는 검사비를 요구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늘어가며 검사를 종용했고 결국 각종 검사에, 자궁 경부암 예방주사까지 맞고서 병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끝난 후 결과를 들으러 갔더니, 놀랍게도 염증이 조금 있다는 말만 간단하게 하고 상담이 끝나버렸다. 원래 산부인과의 상담이란 그런 것인가. 생돈 날렸단 생각이 자꾸만 반복해서 들었다.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겨, 다시 검사를 받았다. 새로 만난 산부인과 선생님은 무척 시원시원하고, 알아듣기 좋게 설명을 해주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군요. 난포를 키워서 예정일을 받은 다음에 시도를 하신 후, 결과를 보도록 하죠.”
이게 다 무슨 말이람. 다낭성 난소 증후군? 검색창에 쳐봤더니 이런 설명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난소에서 다 성숙한 난자가 하나씩 나온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난자가 나오지 않거나, 아니면 여러 개가 나올 수가 있다. 그래서 생리가 불규칙할 수 있으며 다모증이나 지루성 피부염 등의 증상을 함께 동반하기도 한다.
아... 어쩐지. 그래서 내가 다리털이 숲처럼 무성하게...(이하 생략)
아무튼 약을 받아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에 먹었다. 약은 피임약과 난포 키우는 약, 두 가지였다. 생리 주기를 일정하게 맞추고, 배란일에 맞추어 이른바 숙제를 한 후 다시 병원에 가는 그런 일정이었다. 처음은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왜냐하면 어디서 난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한번 시도하면 곧바로 아이가 생길 줄 알았거든. 정말로 무지함에서 오는 크나큰 착각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지시하신 대로 충실히 이행했건만,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유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선생님은 절대 한 번에 되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위로해주시면서 다시 한번 시도해 보자고 하셨다.
이렇게 두 번 정도의 시도가 모두 실패로 이어지자, 근본적으로 격렬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이게 대체 뭔가. 꼭 이렇게 해서 아이를 만들어야 하는 걸까. 내가 그렸던 그림은 뭔가 좀 더 자연스럽고 반짝 나타나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하.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이상만을 생각했던 철부지 같은 생각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그전에,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내 몸가짐을 바르게 하자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늦게 잠드는 습관을 버리고 운동을 하자. 그래서 나는 방송댄스를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어릴 때 잠시 배우다 말았었는데, 더 나이 들기 전에 다시 가보자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는데 무슨 관절이 로봇보다 더 삐걱거렸다. 댄스학원에서 나는 약 5개월간 몇 가지의 여그룹 안무를 배웠다. 아이오아이, 원더걸스, 여자친구, 레드벨벳의 노래들...
그렇게 매일같이 땀을 빼면서 다이어트를 시도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완치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살을 빼면 대사가 활발해지면서 몸 컨디션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도 의사 선생님이 덧붙였다. 나름의 식이조절을 운동으로 3kg 정도 감량했다. 그러자, 예전보다 훨씬 더 생리주기가 규칙적으로 변했다. 몸도 가벼워졌고. 나름 자신감도 붙었다.
‘나를 먼저 가꾸는 게 중요하구나.’
그렇게 몸을 가꾸면서 준비한 몇 개월의 시간 이후 정말로 밤이가 생겼다. 철없이 생각했던, 깜짝선물 같은 그런 느낌으로 정말 밤이가 와준 것이었다. 그 오묘하고도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 밤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특별한 태몽은 없었으나 아이가 찾아오기 몇 개월 전, 이런 꿈을 꿨다. 누군가 나에게 어린아이를 맡겼는데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그 꿈이 너무 선명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그 꿈을 태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 우리 밤이는 여자아이가 맞다. 그것도 엄청나게 활발한 여자아이.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한 첫날, 처음으로 받아 든 초음파 사진에 대고 나는 육성으로 밤이에게 말했다.
반갑다, 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