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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율 Nov 01. 2020

4) 임신 5주, 일이 터졌다!


임신 초기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나에겐 너무 막연했다. 평상시처럼 다니되, 무리만 하지 않으면 되겠거니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너무나도 안일했지. 그리하여 임신 6주,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첫 임신을 알게된 때가 5주차. 그주 주말에 약속이 있어 외출을 하고 왔다. 다른것도 아니고 예전부터 표를 예매했던 콘서트였다! 이미 구해두었던 표이니 가서 가만히만 앉아있자. 라고 생각했다. 쿵쿵거리는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어깨춤이 절로 났지만, 꾹 참고 정말 얌전히 눈으로만 잘 보고 왔다. 최대한 자제해서 별 문제 없겠지 싶었다. 


그러나 일은 그날 저녁에 벌어졌다. 갑자기 하혈을 시작한 것이었다. 피의 색깔이 갈색이었고 심하진 않았기에 일단 지켜보았다. 그런데 사흘째 지속되니까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둬서는 안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출동했다. 초음파로 상태를 확인해보는 의사선생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절박유산이라는 거예요.



이건 또 무슨말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에 '유산'이 들어가니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갑자기 질문거리가 백 가지는 생겼다. ‘그게 뭔데요’부터 시작해서 ‘아이가 살 수는 있을까요?’ 라는 드라마 대사같은 질문까지.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생각 끝에 모든 생각을 압축해 질문했다. 선생님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셨다.


“임신 초기에 아기집 주변에 피가 고이는 현상인데, 그 피가 아기집까지 쓸고 내려오면 유산인겁니다. 집에서 최대한 누워있어요. 절대안정. 그리고 유산 방지 주사 놔드릴게요.”


그렇게 나는 주사를 한대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검색으로 절박 유산을 얼마나 찾아봤는지 모른다.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은 다른 엄마들도 절박유산 판정을 받고서부턴 누워서만 생활했다고 했다. 심한 경우는 입원도 해야 한다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동안은 진짜 침대와 한 몸이 된 생활을 지냈다. 진짜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누워서 움직이지 않았다. 할 일이 없어 하루 종일 드라마를 봤다. 일부러 긴 드라마를 선택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 위해. 그때 봤던 드라마가 자이언트였다. 봤던 드라마지만 정말 재밌었던 기억에 다시보기로 정주행했다. 남매가 재회하는 감동적인 장면에 함께 울면서 드라마의 여운을 즐겼다. 그렇게 지루한 눕방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밤이를 지키기 위한 최초의 행동이었다.


해야지 라고 마음 먹고 움직인 게 아니었다. 내 몸이 본능적으로 아이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밤이에게 말을 걸었다. 꼼짝도 안하고 있을게, 안에서 부디 잘 지내고 있어줘. 그렇게. 


간절한 바람이 통했는지 다행히도 피는 멈추었다. 그리고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이젠 괜찮다고 해주시는 말이 어찌나 감사하게 들리던지. 안심하며 기뻐하는 나 자신에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 자신을 위한 기쁨이기도 했지만, 밤이가 무사하게 살아 뱃속에서 지낼 수 있어 드는 기쁨과 안도감은 분명히 타인을 위한 감정이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내가, 전심으로 타인을 위해 내 온 감정을 쏟아부은 것이었다. 짧고 얄팍하게나마 자신의 내면이 성숙해지는 순간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완벽하게 임신 초기로 접어든 6주무렵. 나는 병원에 가서 다시 한번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처음으로 밤이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있는 두근 두근 같은 소리가 아니었다. 약간 주머니에 공기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소리로 치자면 수왑 수왑 수왑 거리는 음이었다. 


이렇게나 신기할 줄이야! 


예쁘거나 아름답거나 라는 수식어보다는 신비롭다. 신기하다 이런 표현이 더 어울렸다. 밤이는 힘차게 심장소리를 뽐내며 그렇게 내게 존재를 과시했다. 내가! 여기! 살아있어요! 라고 보내는 메시지 같아서. 


그 중독적인 소리를 동영상으로 받아와 몇 번이고 듣고 또 들었다. 아이가 낸 소리를 그렇게 매일매일 듣고 싶어서 나는 뱃속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 심장소리를 확인하는 기계가 있다. 그걸 구입해서 매일매일 뱃속에 그걸 대고 심장음을 들었다. 비슷한듯 매일이 다른 밤이의 심장소리를 듣는게 하루의 일과 중 하나였다.


그 소리를 원동력으로 나는 살아갔다. 결코 쉽지 않은 임신기간을 이것으로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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