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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율 Nov 01. 2020

3) 내가 임신하자,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병원에서 초음파 사진을 들고 친정엄마가 일하는 곳으로 갔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엄마한테 가장 먼저 말하고 싶었다. 


뜬금없이 전화를 하니, 엄마가 심상치 않아하면서도 오라고 했다. 사진 보여주면서 임신했다고 말하자 왠지 그거일 것 같았다고 말씀하셨다. 역시 엄마의 촉이라는 게 있는 걸까. 


우리 엄마는 중요한 일이 있으면 조금 더 침착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토록 기다려 왔던 손주 소식인데,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조금 김이 빠졌다. 그래도 좋아해 주셨으니까.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엄마의 일터를 나섰다. 엄마는 나를 버스 정거장까지 데려다주셨다.


“이제 몸조심해야지. 홀몸도 아닌데.”


이때를 시작으로 임신 내내 엄마에게 수도 없이 같은 말을 들었다. ‘홀몸도 아닌데.’라는 말. 유난히도 이 말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엄마로서의 책임이 시작되는 순간이랄까. 


물론 엄마는 조심하라고 한 말이었겠지만, 나는 왠지 그 말이 꼭 잔소리처럼 생각되어 흘려듣곤 했다.






곧바로 신랑의 작업실로 향했다. 신랑은 우리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역시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나를 보고 신랑은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하는.


나는 말없이 손에 들고 있던 초음파 사진을 건네주었다.


“이게 누구 건데?”


헐. 누구 거라니. 딱 보면 모르겠어?

난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 아기!”


띠용.


평소에 감정표현을 잘 안 하는 신랑이었다. 역시 듣자마자 뭐라고? 우와 등의 환호성 따위는 기대 안 했다. 그래도 뭔가 놀라는 제스처가 하나라도 있겠지. 싶었는데 우리 신랑, 보자마자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내 앞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어때?”


한참이 지나도 말을 안 하더란다. 보기엔 말을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어... 이거 되게 설레는데.”


태생이 공대생인 우리 남편. 억양은 로봇 같았지만 말속에 진심이 보였다.

아 이 사람 진짜로 설레고 있구나.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신랑뿐 아니라 나도. 아마 각자의 생각에 잠겨 그랬겠지.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궁금하면서도, 설레면서도. 기대되는 한편 걱정스럽기도 할 거고. 이런 마음이 복합적으로 들었을 터였다. 우리 둘 다.


그렇게 우리는 밤이의 탄생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다음엔 시부모님께 직접 찾아가서 알렸다. 아마 밤이를 가장 많이 기다리신 분들일 것이다. 신랑은 외동아들이었고 친정보다 훨씬 더 손주를 간절하게 바라셨을 텐데, 결혼 후 3년 4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니 걱정도 많이 하셨겠지. 내게 직접적으로 손주에 대한 얘기는 거의 꺼내시지 않으셨지만... 아무튼 소식을 전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시던 시부모님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친구들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앞장에서 언급했던 나의 친구들은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친구들 아홉 명 중, 결혼한 사람은 나 하나였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2세가 생기는 것도 처음이었다. 친구들은 이모가 여덟 명이나 된다며 즐거워했다. 나 역시 밤이가 이모들에게 둘러싸여 재롱 피우는 모습을 상상하니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번졌다. 


이렇게 주변에 알리고 나니 조금 더 마음이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집배원이 된 것처럼, 내 손에 들린 편지를 상대에게 주고 나서 드는 뿌듯함과도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내게 기쁜 소식을 알릴 수 있게 해 준 밤이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런데 이렇게 기쁨을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뜻밖의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알지도 못했던 그 이름은 나를 충분히 당황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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