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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율 Nov 01. 2020

1) 아이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시절


엄밀히 말하면 과거 신랑은 나보다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조금 더 방어적이었던 것 같다. 둘다 자기만의 시간은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고, 특히 신랑은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 더더욱 그런 성향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반에는 아이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라고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이 신랑이었다. 특별히 이견은 없었고 그렇게 즐겁게 신혼생활을 보냈다. 


1년에 한 번 이상은 여행을 갔었다. 외향적 성향 덕분에 밖에 돌아다니는 건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여행은 떠날 때마다 너무도 행복했다. 신랑의 업무 특성상 주로 여행지는 대부분 해외였는데,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서 맡는 공기란 너무도 싱그럽고 상쾌했다. 그 감정을 매일매일 느끼고 싶어 해외로 이주할 생각도 했었다. 결국, 여러 외적인 사정들 때문에 이루지는 못했었지만.


친구들과도 많이 만났다. 나는 항상 어떤 모임에 속해있는 사람이었다. 최소 두 가지 모임을 늘 이어나갔다. 학교에서는 동아리에, 외부에서는 자발적으로 동호회 모임에 가입했다. 특히 나는 동호회 활동을 즐겨 했는데 주로 만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늘 만화책을 곁에 끼고 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매 달 출간하는 월간지 만화책을 내 손으로 사 모았고, 중학생이 되면서는 단행본 시리즈를 차곡차곡 집에 들였다.  장르는 가리지 않았다. 그림으로 그려진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고등학교땐 아예 만화 동아리에 들어갔다. 대학교 와서는 인터넷에서 같은 만화 좋아하는 친구들을 사귀었다. 처음엔 스무명 가까이 되었던 친구들이 이젠 세월이 흘러 9명으로 고정되었다. 그 친구들이 이제는 12년지기가 되었다. 시작은 관심사로 뭉쳤지만, 이제는 둘도없는 절친들이다.


그 친구들과 참 오래도록 즐겁게 놀러다녔다. 년 2회씩 모여서 바다로 산으로 놀러갔다. 뿐만 아니라 같이 모여 글과 그림을 그리며 창작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애초에 글쓰는 친구들끼리 모여 우리끼리 자비로 창작지를 낸 적도 있다. 이런생활들이 결혼 후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지금은 모두 생활이 바빠 여행이라 창작활동은 못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모임은 지속중이다. 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렸을 때에도 가장 많은 축하를 해 주었다.


대부도 여행을 다녀온 후, 난 한동안 침대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자꾸 졸렸다. 낌새가 이상해 오래전에 사둔 진단 키트로 검사를 해보았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5분. 그 5분의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헐…!’ 


빨간줄이 두 개. 무척 가슴이 뛰었지만 잠시 그 사실을 어디에도 알리지 않았다. 이때가 토요일이라 병원에서 정확한 확인을 하고싶어서였다. 이틀이 지나 월요일이 되자마자 난 동네 산부인과에 들렀다. 결과는 임신 테스트지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엄마가 된다고…?’


병원에서의 확답을 받은 다음 난 앞으로 바뀔 내 생활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았다. 


‘이제는 예전처럼 친구들과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놀지 못하겠구나.’

‘내가 쓰고싶어했던 글도 진득하게 앉아서 못쓰겠지.’

‘돈은 어떡하지? 그동안은 서로가 벌어서 서로의 생활비를 썼는데.’ 

‘앞으로 내가 제대로 일은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그 모든 어지러운 혼란을 뒤덮는 또하나의 감정이 있었으니. 그건 기쁨과 기대감이었다. 와, 난 내가 이런 감정이 들줄은 정말 몰랐다. 




내 피가 흐르는 나만의 가족


신랑의 협력과 온전히 내 힘으로 감당해야하는 선물같은 존재가 너무도 신기하고 반가웠다. 아마 아이를 가져본 엄마들이라면 이 기분이 이해되지 않을까. 내 뱃속에 새 생명이 있어! 평생 살아오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마치 미지의 세계를 내 스스로 개척해 낸 것 같은 묘한 성취감 같은 것.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이내 자신을 가다듬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선물처럼 찾아와준 내 아이 온 힘을 다해 정성껏 키워보겠노라고. 그러니까 이제 그동안 겪었던, 즐겁고도 한편으론 권태로로웠던 시간을 서서히 정리해보고자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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