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반 증상으로 입덧이 있다. 나는 정말로 입덧이 심한 편이었다. 5주 - 6주사이를 지나던 쯤이었을까.
평상시에 맡았던 아는 냄새들이 갑자기 10배쯤 진해지는 것이었다.
늘 쓰던 샴푸향
매일 먹는 밥
영혼의 단짝처럼 아꼈던 사탕과 캬라멜
모조리 역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마시는 생수까지 비려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먹으면 무조건 게워냈다. 그렇구나. 이것이 말로만 듣던 ‘토덧’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임신한 여자 캐릭터가 화장실에 가서 입덧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 나도 임신 전에는 입덧이 그런 걸 줄 알았지. 겪어보니 웬걸. 절대 그런게 아니다.
너무 지저분한 이야기인 것 같아 쓰기 망설여지지만, 그래도 나는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왜!
이런!
현실을!
어디에서도 얘기해주지 않았을까!
힘들어서 미치고 팔딱 뛰겠고 매일매일 눈물이 멈추지 않는...그런....것이라고 말이야....!
그런데 이건 있다. 나는 입덧이 저엉말 심한 편에 속했다. 나처럼 입덧이 정말 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로 입덧따위는 없고 멀쩡한 사람도 분명히 존재했다. 아니면 입덧의 양상이 다른 사람도 있다. 계속 뭔가를 먹고싶다면서 먹을 걸 끊임없이 달고 다니는 증상. 이것이 바로 ‘먹덧’이라고 한다. 차라리 먹덧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먹을거라도 먹으면서 입덧을 하는게 좀 낫지 않았을까. 내가 입덧을 할 때에는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었으니까.
입덧할 당시에 난 임신전보다 몸무게가 5kg정도 빠졌었다. 정말 놀랄정도로 쑥쑥 빠졌다. 체중계의 숫자가 줄어드니까 내심 좋으면서도 동시에 걱정이 생겼다. 이렇게 갑자기 막 빠져도 괜찮을까. 밤이에게 뭔가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닐까. 참...이게 나도 나인데 밤이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게 신기했다.
어쨌든 하루 24시간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지내는 와중에도 문득 떠오르는 음식들이 있었다. 첫번째는 두루치기였다. 집앞에 두루치기 잘하는 가게가 있었는데, 신랑이 그 음식을 사 와서 다음날 아침에 데워먹었다. 신랑보다 늦게 일어난 나는 침실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엄청나게 거대한 냄새 폭탄이 내 앞에서 펑 터진 것 같았다. 나는 참을 수 없었고 그대로...(이하생략)
신랑은 내가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니 괜히 끓여먹었다며 미안해했다. 나는 괜히 잘못도 없는 신랑이 원망스러웠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두루치기는 못먹는 몸이 되었는데, 좀 이상했다. 이렇게 냄새 때문에 먹지도 못할거, 살 당시에는 왜 당겼던 걸까. 기세좋게 사먹자고 해놓고 막상 못먹으니까 억울하기도 했었다.
두 번째는 족발이었는데, 평소에 난 족발을 먹지 않았다. 이상하게 족발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그런데 그날은 유독 족발과 막국수를 함께 먹고 싶었다. 때는 일요일 저녁 10시를 넘긴 참이었다. 당시엔 요즘처럼 배달어플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였다. 우리 동네에선 그 시간에 열려있는 족발집을 찾기가 어려웠다. 내가 너무 시무룩해 있으니 신랑은 어떻게든 그걸 사가지고 오겠다고 무작정 나갔다. 한참 헤매다가 망원시장에서 문 닫으려던 족발집을 어찌어찌 찾아내 내가 먹고싶다던 음식들을 사갖고 오는데 성공했다. 참으로 정성 지극한 신랑이기도 하지.
그런데 이번에도 막상 그 음식들을 눈앞에 두고 있자니 먹을 마음이 거짓말처럼 싹 가셨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심지어 족발은 보는 것만으로도 올라올 것 같아 참을수가 없었다. 그런데 신랑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때. 자기가 먹고싶은거 내가 사왔어! 잘했지!
그러니 어서 먹어!
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면서 족발과 막국수를 열심히 먹었다. 그래도 사온 성의가 있으니까.
결과는 참혹했다.
나는 변기를 붙잡은 채 한 번 더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게 뭐 슬퍼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구역질을 하다보면 눈물 샘을 자극하는 건지 어쨌든 눈물이 났다. 대체 이런 고생은 왜 해야 하는걸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그 와중에도 신랑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몹시 숨죽였던 기억이 난다. 참... 신랑이 내게 보인 성의가 고마워서였는지. 고생해서 사가지고 온 음식을 모두 흘려 보냈다는 사실은 알리고 싶지 않았다. 뭐, 내가 이렇게 숨겼지만 모르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모른척 한 것인지도.
이 고생스러운 입덧은 중기까지 계속 되었다. 잘 먹지 못하다보니 신경도 눈에 띌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매주 주말마다 교회에서 시부모님을 만나 인사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기에 그 분들을 만날때, 시부모님께서 뭔가 먹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실 때마다 나는 절대 먹을 수 없다고 칼같이 거절했다. 아마 많이 서운하셨을 거다. 어르신들은 내가 걱정되니까 뭐라도 좀 먹어야지, 라는 의미로 물어보셨을텐데. 나는 음식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음식의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아 진절머리를 쳤다. 예를 들면 짜장면 같은 거. 말만 들어도 상상되는 기름냄새에 상상하는 순간 거부감이 느껴져서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현재는 전혀 냄새에 예민하지도 않고 먹지 못했던 음식들도 이제는 그럭저럭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내 몸이 냄새에 이렇게나 기민하게 반응했던 것이 꼭 거짓말 같았다. 임신 관련 책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입덧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었다. 산모가 입덧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음식을 가려 먹게 되면서, 태아에게 불필요하고 위험한 성분이 흡수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설명을 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결국 입덧 역시 아이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막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