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율 Nov 01. 2020

6) 밤이의 수술

2장

퇴원 후 나는 집과 병원을 다니는 것 외에 어떤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밤이가 하루라도 빨리 집에올까’라는 생각 뿐이었다.


껍데기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어느날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밤이 어머님이시죠? 여기 신생아 중환자실인데요.”

“아, 네.”


나는 급 긴장했다.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거의 안 좋은 소식이기 때문이었다. 


“밤이가 수술 들어가야 하거든요, 될 수 있으면 빨리 병원으로 와주셔야 할거같아요.”

“수술이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동맥관 개존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약물을 사용해 보았지만 차도가 없어 상태가 계속 안좋았었다. 결국은 수술을 감행해야한단 소식에 신랑과 함께 나는 미친듯이 뛰어서 NICU로 향했다. 이미 병원에서는 수술 준비중이었다.


“여기 동의서에 사인해주세요.”


간호사는 내가 수술했을 때와 같이 여러장의 서류를 들고왔다. 수술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 혹은 돌발성 이벤트에 다한 설명은 두번째 듣는 것인데도 무시무시했다.  특히 수술 당사자가 아닌 보호자의 입장이 되니 더더욱 손이 떨렸다. 내 수술땐, 혹여 잘못 될 경우 같은 건 솔직히 감흥 없었다. 그럴 정신도 없었고. 그런데 밤이가 수술 받는 도중 잘못될 수도 있다는 말에 -으례 하는 간호사의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속 깊은곳에서 부터 깊은 거부감을 느꼈다. 아니, 우리 애가 잘못된다니. 수술 받으면 당연히 나아지는 거 아니야? 라면서. 


이른둥이의 경우 아이가 너무 작기 때문에 수술을 NICU에서 한다고 한다. 수술이 시작될 무렵, 가족들이 하나둘 뛰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친정집 식구들이, 그 다음엔 시부모님께서 뛰어오셨다. 오늘 수술 받는단 연락을 받은 시부모님께서는 어떤 행사에 참석하다 말고 그대로 뛰쳐나오셨다. 하도 뛰어서 이마에 땀이 흥건한 시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아, 다 같은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들은 그렇게 수술실 복도 의자에 앉아 밤이를 기다렸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긴. 이 상황에 무슨 할 말을 꺼낼까. 당사자인 내가 모자를 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니 약속한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다 갑자기 친정엄마가 잠깐 바람 쐬고 오자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냥 있겠다고 했는데도 엄마는 데리고 나갔다. 아마, 조금이라도 편하게 앉아있기를 원하는 엄마의 마음이었겠지.


그렇게 엄마와 나는 따로 떨어져 나와 1층에있는 로비에 내려왔다. 엄마하고 있으면 이래저래 수다를 많이 떠는 편인데 오늘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술이 시작될 무렵부터 나 역시 상당히 긴장을 한 것이었다. 그 무렵, 스피커에선 조용한 교회음악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하필 공교롭게 그때 나왔던 음악이 ‘내가 천사의 말을 하여도’였다. 나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밤이를 가졌을 때. 태교랍시고 주구장창 배에 대고 불렀던 노래여서였다.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한 곳에 서있지 아니하고
불의에 기뻐하지 아니하네


수술 내내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어떻게 그렇게나 눈물이 흐르던지. 


내가 우는 꼴을 세상 그 어느것보다 싫어하던 엄마였는데, 그 날은 내 등을 어루만지면서 위로를 해주었다. 


“왜 울고 그래.”

“저 노래. 내가 밤이 가졌을때, 맨날 불러줬던 노래란 말야.”


아이가 너무 작아 태어난 직후에는 할 수도 없었고 이제야 하게 된 수술이었다. 

살을 째고 진행해야 했다. 그 작은 몸에 칼을 대야 했다. 증상은 좋아지겠지만, 등에는 칼을 댔던 자국이 흉터로 남을 것이다. 그 흉터는 평생 밤이가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며 자라면서 크기도 커지겠지. 


그걸 생각하니 밤이한테 너무 미안해져서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엄마도 얼마나 아팠을까. 외유내강인 엄마도 그날만큼은 내 모습을 보는게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괜찮아. 밤이 퇴원하고, 많이 불러주면 되잖아.”


그렇게 위로하는 엄마도 역시 울먹거리며 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 겪는 기쁜 감정들, 힘들면서도 느끼는 뿌듯함과 가슴 벅찬 설렘. 그리고 희망찬 미래 같은 좋은 감정들을 왜 나는 느낄 수 없는지 의문이었다. 입원하면서부터 그걸 느꼈다. 왜. 나는 다른 엄마들과는 다른 것 같지? 왜 나는 임신하고 유지하는 과정도 그렇고 출산도 그렇고 힘이드는 걸까. 왜 난 혼자서만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야 할까.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이 깊은 외로움은 대체 무엇일까. 밤이에 대한 걱정 대신, 사랑스러워 못견딜 것 같은 감정을 더 느껴보고 싶은데.


왜 나는 그게 안되는 걸까.


얼른 수술이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바램과는 달리 수술 시간은 길어졌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1시간 30분보다 한참은 더 걸려서야 선생님이 밖으로 나오셨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말을 듣자, 온 몸에 맥이 탁 풀렸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수술 직후, 나와 신랑이 밤이를 보러 안으로 들어갔다. 밤이는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깊이 잠들어 있었다. 평소 면회하면서 봐왔던 밤이가 아니었다. 팔다리가 축 늘어져있는 밤이를 보고 있자니 또 한 번 눈가가 찡하고 아렸다.


‘잘 했어 밤이야. 이제 쑥쑥 크는 일만 남았네. 얼른 커서 집으로 가자.’


밤이를 보며 나는 마음으로 말해주었다. 


수술이 끝나자 밤이는 이전과는 다르게 훅훅 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성장이 더뎠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도 커지고 우유도 잘 먹었다. 아직 폐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일단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가슴 속에 있던 먹구름 무리들이 조금씩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지긋지긋한 양압기를 떼어내고 콧줄로 바뀐 것도 수술이 끝난 이후였다. 밤이의 몸에 붙은 수많은 선들이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내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퇴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은연중에 직감하게 되었다.



이전 13화 5) 밤이의 상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