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밤이가 회복세를 보이던 무렵, 나는 신랑과 속초에 가기로 했다. 마음이 너무 지쳐있고 힘들게 고민하다 보니, 신랑이 안되겠는지 내게 권유했다. 그래, 바람이라도 조금 쐬고 오면 낫겠지.
나는 신랑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양양 고속도로를 지났다.
얼마나 하늘이 맑은지, 이렇게 좋은 날씨를 혼자만 본다는게 아까웠다.
세 시간이 걸려 속초에 도착했다. 그때가 5월 중순무렵. 비수기였던지라, 그 지역의 모든 물가가 싼 편이었다. 나는 일부러 바닷가가 보이는 호텔을 예약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창 너머로 넘실대는 파도가 보였다. 원래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었다.
우리가 이 곳에서 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쉬는 것 뿐이었다. 속초의 중앙시장으로 가서 생선살이 들어간 지리를 끓여먹었고 후식으로 씨앗호떡을 시켜먹었다. 그리고 야식으로 먹을 닭강정을 하나 샀다. 강릉에는 원체 닭강정이 유명한데, 우린 중앙 닭강정을 골랐다.
달콤한 양념이 골고루 섞인 닭강정은 바삭바삭한 과자같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청초호에 들렀다. 호수 주변에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을 차근차근 둘러보고는 문득, 이 곳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한테 말했더니 자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늘 북적이는 도심에서 살았던 나에게 이 곳은 정말로 힐링 그 자체였다.
나는 사진을 잘 찍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그날 어쩐지 꽤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난 셀카봉을 들고 신랑과 함께 셀프 동영상을 찍었다. 잔잔한 파도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나는 밤이에게 영상편지를 남겼다.
밤이야. 엄마와 아빠는 잠시 바다를 보러왔어. 여긴 지금 날씨가 너무 좋아. 바닷물도 너무 맑고, 바람도 시원하네? 그런데 밤이랑 함께 오지 못해서 너무 아쉬워. 밤이가 퇴원하고 집에 오면 우리 꼭 같이 이 곳에 오자. 엄마와 아빠와 밤이 셋이 같이 하는 여행은 참 즐거울 거야.
나중에 밤이가 크면 이 영상을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찍었다. 그런데 다 찍고 확인 해보니 소리가 녹음 되질 않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비록 뻐끔거리는 화면만 녹화되었을 지라도, 나중에 밤이한테 설명해 주면 되니까.
넓고 깊은 바닷물을 보면서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곤 신랑과 저녁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좋은 엄마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신랑은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냥 최선을 다하는 거지 뭐.
그러게. 최선을 다해야겠다. 이 여행에서 나는 그런 다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따금 나는 이 여행을 떠올린다. 지치고 힘들때, 가만히 넘실대는 파도가 꼭 그 상처받은 가슴을 어루만져주듯이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무런 잡념 없이 몸과 마음을 누일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밤이가 조금 자라고 나서, 신랑과 함께 셋이 다시 이 곳을 들렀다. 두 번이나. 속초는 내가 들를 때마다 같은 모습과 분위기로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지금도 나는 종종 신랑에게 말한다. 우리 속초에 가서 살자. 그러면 신랑은 언제나 좋다고 고개를 끄덕여준다. 아마 신랑도 나와 같은 마음인 듯 했다.
지치고 힘들 때, 마음을 기댈 수 있게 어깨를 내어주는 곳.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속초의 그 시원하면서도 짭짤한 바다내음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