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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May 22. 2016

세 손가락을 모아 숨 고르기

환경을 바꾸면 행동이 달라진다

석 달 전, 연인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의 시간이 여유롭지 않으니, 최대한 시간을 맞추어 그의 일터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잠시 저녁을 먹거나 커피를 한 잔 마시거나 짧은 시간을 보내면 다시 돌아와야 한다. 장롱면허 13년, 쓸 데 없이 면허 갱신까지 해놓고서도 운전대를 잡을 줄 모르니 초록 버스, 파란 버스, 큰 버스, 작은 버스, 지하철, 국철 이런저런 대중교통수단을 갈아타는데 익숙하지만 빨간 버스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과 경기도 주요 도시를 잇는 빨간색 광역버스는 교통카드를 찍고 타기는 하지만, 두 명씩 짝을 지어 진행방향을 보고 앉는 것이나 해를 가리기 위한 커튼이 있는 것, 그리고 시큼하고 묵직한 버스 특유의 냄새 등 모든 것이 멀리 떠날 때 타는 고속버스 같다. 매번 버스에 오를 때마다 여행을 가는 듯하고, 혼자 떠나는 여행처럼 어딘가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며, 창 밖의 풍경이 닿을 수 없이 멀게 느껴진다. 길어야 한 시간 반이면 내릴 것이지만, 차에 탄 모든 사람들이 하루의 피로를 하품에 쏟아내니 그 무게에 어깨가 처지고 눈꼬리가 내려간다. 이어폰에 들리는 노래도 어느 순간 사라지며 졸리지 않아도 졸리다.


여러 대의 초록 버스, 파란 버스들이 눈 앞에 왔다가 사라졌다가 또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앞과 뒤의 두 개의 문을 펄럭이며 사람을 올리거나 내리고 나서야 빨간 버스가 등장한다. 운전석 옆으로 펼쳐지는 문으로 올랐다가 그 문으로 내리니, 시장에서 본 시들한 빨간 도미의 아가미가 생각난다. 자잘한 초록과 파랑의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으면 저 멀리 뒤 쪽에 버티고 있다가 가까이 다가온다. 뻐어끔 문이 열리고 닫히면, 빨간 버스는 무거워진 몸을 흔들며 도로를 빠져나간다.



2주 전, 멀리 보이는 버스가 정류장 앞에 설 것임을 기대하고 적절한 위치에 섰다. 버스는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서 가버렸다. 작은 물고기 사이를 가르고 빠져나가듯, 버스는 멈추지 않고서 갔다. 저녁 늦은 시간, 짧아도 이십 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이었고, 밤바람은 차가웠다. 눈 앞의 신호에 걸려 멈춰 선 버스에 뛰어가 문이라도 두드려야 할까 고민했지만, 길에 지나는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뻗는 것 조차 부끄러워 팔꿈치를 몸통에 붙인 채 최소한의 손짓만 하는 사람이 나다. 문을 두드릴 엄두는 나지 않는다. 차선책은 다음 버스를 잡아 타는 것. 내가 탑승할 것임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했다. 저 멀리 서 있는 버스가 정류장에 한 번 더 멈춰주지 않을 것이니 미친 듯 뛰어가 잡아타야겠다 다짐했다. 보기 좋은 난간처럼 인도 가장자리로는 비밀의 정원에 나오는 빽빽한 나무들이 허리 높이로 심겨 있고, 저 먼 곳의 버스로 가려면 나무와 도로 사이의 좁은 틈을 꽂게 걸음으로, 그것도 버스가 떠나버리기 전에 빨리 가야 한다. 위험하긴 해도, 떠나는 버스에 손짓하는 것 보다야 할만할 것이었다. 다음 버스가 다가왔다.



긴장됐다. 시간은 늦었으니 꼭 타야 한다. 핸드폰으로 실시간 버스 위치를 확인한다. 5분, 4분, 3분, 2분 … 1분 전이 되자 길게 늘어선 버스들의 색깔을 확인하며 머릿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한다. 가로등과 가로수 사이 틈으로 들어가 폴카 스탭처럼 깡충깡충 균형을 잃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빠른 꽃게 걸음. 일곱여 대의 버스 뒤편으로 빨간색의 버스가 윙크하듯 살짝 비추자 주저 없이 뛰었다. 버스 멀미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사 아저씨 바로 뒤 시야가 뚫린 자리를 차지하고 한 숨을 돌렸다. 나를 태우자마자 버스는 문을 닫았고, 나는 마치 멀리 오는 사람을 인지하고서도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를 때의 묘한 기분을 느꼈다. 버스는 앞에 늘어진 초록, 파랑 버스를 오른쪽으로 내버려둔 채 흔들흔들 도로를 빠져나간다. 정류장을 슬쩍 지나치니 20분 전의 나 같은 사람이 ‘어.. 어라?’ 하는 눈으로 버스를 바라본다. 손조차 들지 못한 나보다 용감한 그 사람은 신호에 걸려 대기 중인 버스의 문을 두드린다. 기사 아저씨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서 묵묵히 정면 응시했고,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지만 그러진 못했다. 그저 생각했다. 아, 나는 다음에도 또 뛰어야겠구나. 다음번에는 당신도 뛰겠군요. 고등학교 때가 떠올랐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는 두 개의 시장을 지났다. 시장에서는 늘 어김없이 할머니들이 옆구리에 빨간 고무 바케스를 끼고, 총천연색 봉다리를 흔들며 버스를 잡고 인도에 가까워지는 버스로 뛰었다. 그 모습은 어린 내게는 그저 우악스러워 보였다. 이제 보니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그러므로 환경은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어필하지 않으면 떠나는 버스는 나를 긴장되게 하고 결국 뛰게 만들었다.


환경을 바꾸면 행동을 바꿀 수 있다


환경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한편으로는 환경을 바꾸어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원하는 행동방식이 있다면 먼저 환경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칭찬하는환경이 고래를 춤추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래도 필요할 때 춤을 춘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춤이 필요하게 만들면 된다.


매일 같은 일상,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환경을 바꾸어도 태도가 달라진다. 회사에 다닐 때는 늘 커다란 머그나 텀블러 가득 커피를 담아 왼손으로 쥐고 마시는 동안, 오른손으로는 마우스 클릭, 두 눈은 모니터를 향하는 아침을 보냈다. 회의 중에도 비슷했다. 눈이 가는 곳과 손이 가는 곳은 달랐다. 머그는 그래서 멀티태스킹이 필요한 바쁜 현대인에게 적합하다. 그러나 받침이 있는 잔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찻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신 후엔 다시 컵받침(saucer, 이하 소서) 가운데에 내려놓아야 하니 시선을 계속 찻잔에 두어야 한다.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이 손잡이 안으로 모두 들어가 안정적인 머그와 달리, 찻잔은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중지에 붙여 힘을 실어줄 뿐 사실 엄지, 검지, 중지의 세 손가락으로 조정하게 되어 있어 찻잔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니 아무리 등치가 좋은 사람도 찻잔 앞에서는 두꺼운 손가락 세 개를 모아 귀엽게 쓸 수밖에 없고, 화가 날 때도 찻잔을 힘껏 내려놓았다간 담긴 커피가 쉽게 튀어올라 옷을 망친다. 테이블에서 멀리 앉거나 잠시 서 있는 때도 한 손으로는 소서를, 다른 한 손으로는 컵을 들어야 하니 두 손이 모두 공손하다. 서양 영화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씬. 공주처럼 자란 딸이 혼전 임신을 고백할 때, 당황하고 화난 부모는 일단 손에 쥔 컵을 부들부들 위 태위태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소서 위에 내려놓는다. 머그는 다른 일을 하며 막 다룰 수 있어도, 찻잔은 함부로 할 수가 없으니, 그 어떤 상황에서도 숨을 고르는 행동을 유도한다. 머리 끝까지 치솟는 화를 참아야 할 때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 내가 꼭 소서가 있는 찻잔을 꺼내어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한 장면
추리 중인 셜록과 그의 티타임

어려운 대화가 필요한 때는 티팟과 찻잔세트를 모두 내어 차려보면 좋다. 티팟의 뚜껑은 차를 따르며 떨어질 수 있으니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뚜껑을 지그시 눌러주어야 한다. 두 손을 모두 써야만 한다. 대접받는 입장에서도 두 손으로 따르는 차를 무시할 수는 없다. 상대방의 두 손으로 만든 차를 기분 나쁘다 뿌리칠 사람은 많지 않다. 손 앞에 놓인 것이 머그가 아닌 찻잔세트이면 더 그렇다. 아무리 싫어도 두 손을 모두 사용해 한 손으로는 소서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의 세 손가락으로 들어 올려 마시며 그 역시 나름의 공손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차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대화는 원활하다. 환경이라는 단어가 집안 환경, 성장 환경 등의 거창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쉽다. 어떤 분 위기인가에 따라 사람은 다르게 행동한다. 짜장면 배달도 못 시키고, 달리는 택시를 쭉 편 손으로 잡지 못하는 내가 미친 듯 뛰어 버스를 잡아 타는 행동을 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한 번 두 번 지나면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어진다. 그다음 주 나는 망설임의 여지없이 도로 갓길로 뛰어가 버스를 잡아 탔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그래야 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열흘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로 탓인지 아침 늦도록 잠을 자고, 간식 먹던 습관이 붙어 하루 종일 배가 고프다. 환경부터 바꾸기를 시도할 때다. 꽃을한 다발 사다 꽃아 두어 눈을 뜨자마자 꽃병의 물을 바꾸어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커피를 연신 들이키게 되더라도 꼭 뜬 눈으로 오전을 보내고, 낮잠이 쏟아지면 기어코 침대와 책상에서 엉덩이를 떼어 내어 잠시 분리수거라도 하러 나갈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을 정해진 시간에 먹고 그게 어려우면 일부러 그 시간에 약속을 잡아둘 것이다. 여름옷들 위주로 옷장 정리를 새로 하고 봄 옷가지들을 세탁소에 맡기고, 쌓인 먼지를 말끔히 털어낼 것이다. 잠이 들지 않아도 제시간에 누워 잠을 기다리고, 와인 한 잔 이나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곁들여도 좋을 것이다. 몽롱한 기운에서 벗어나 맑고 깔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분위기 정돈부터 해 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맞은 아침, 큰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담아 일과 함께 아침을 시작하고 해 질 녘에는 찻잔세트를 꺼내어 머릿속을 말끔히 하나씩 정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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