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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Jun 01. 2016

돈가스와 그릇 사이 1센티

인간관계에도 건강한 거리가 필요하다

시내에 특별한 날 가는 경양식집이 있었다. 보스턴에도 갔고, 오페라하우스에도 갔고, 노스탤지어라는 이름도 있었다. 빨간 융단이 드리운 계단을 사뿐사뿐 오르면 천정의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는 샹들리에가 있었고 흰 셔츠에 까만 조끼를 입은 직원이 자리로 안내했다. 알 수 없는 팝송이 흐르기도 했고, 익숙한 선율의 모차르트, 베토벤 피아노곡이 흘러나왔다. 피아노 학원에서 내 손으로 연주할 때와는 사뭇 달라 이것이 과연 같은 곡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촉촉한 느낌의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에는 손에 익지 않은 포크와 나이프, 밥숟가락보다는 좀 더 타원형으로 길쭉하고 깊이가 있는 서양식의 스푼이 놓였다. 잠시 후 우리 집엔 없는 납작하고 오목한 접시에 크림수프가 담겨 나왔다. 떠먹는 요구르트가 유제품 계의 사치였던 당시에는 마트에서 쉽게 크림이나 치즈를 구할 수 없었다. 어린 내게 경양식 집에서나 접할 수 있던 ‘크림’이라는 단어는 ‘웨딩드레스’라는 단어처럼 그 자체가 우아한 공주 같아 조금은 수줍었다. 퇴장하는 신부의 발걸음에 은은한 진주빛을 반짝이며 묵직하게 떨리는 드레스 자락처럼, 입 안의 크림수프는 낭창낭창 탄력 있고 묵직하게 목구멍을 쓰다듬듯 넘어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메인 메뉴는 돈가스였다. 케첩과 마요네즈를 섞어 살구색에 가까운 소스와 양배추가 어우러진 샐러드가 조그맣게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마카로니 샐러드가 자리한다. 먹는 게 아니라고 엄마가 당부한 초록의 파슬리도 접시를 장식하고 그 옆으로는 반쯤 익힌 주황색 당근이 두 조각 곁들여져 있었다.


큰 접시 한 바퀴를 빙 둘러 마지막으로 돈가스에 시선이 멈추면 마음이 설렜다. 안정을 취하듯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선 엄마를 따라 오른손에 나이프, 왼 손에 포크를 쥐었다. 좀 더 어릴 때는 나이프 질에 익숙지가 않아 엄마가 먹기 좋게 돈가스를 모두 썰어 접시를 바꿔주었는데, 몹시 아쉬웠다. 돈가스는 자고로 써는 맛인데, 아이라는 이유로 그 즐거움을 박탈당했다. 언젠가 나이프를 쥔 검지 손가락에 힘을 주어 돈가스를 자를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그 희열은 잊을 수 없다. 작게 한 입 썰어 입 안에 넣으면, 내가 앉은 그 공간이 가본 적도 없는 베르사유 궁전이 됐다. 명절에 할머니 집 문 밖에 놓인 고모의 하이힐에 작은 발을 넣고 걸을 때의 으쓱한 기분과 비슷했다. 내가 써는 돈가스는 나를 아가씨로 만들었다.



그때도 지금도 먹는 속도가 꽤나 느린 내가 이런 벅찬 감정을 안고 먹으려니, 돈가스는 점점 식어갔다. 따뜻하고 바삭한 튀김옷 위로 얹어진 갈색의 소스가 맛이 좋은 것을, 반을 채 먹기도 전에 그릇과 맞닿은 돈가스 바닥은 눅눅해졌다. 물에 젖은 듯한 튀김옷은 칼질을 해도 바삭하는 소리가 나질 않았다. 그저 그릇과 칼이 닿는 소리뿐이다. 자정이 넘어 공주옷이 사라져버린 신데렐라처럼, 남은 반은 풀이 죽어 먹었다. 물론, 후식으로 나오는 아이스크림에 바닥에 닿지 않은 나의 두 발을 촐랑거리며 금세 기뻐졌다. 시든 마음이 살아나는 속도도 흥겹게 교차되는 두 다리의 속도처럼 빨랐다.



좀 더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보스턴의, 노스탤지어의, 오페라하우스의 돈가스와는 다른 또 다른 돈까

스가 나타났다. 내가 알던 녀석보다 더 두툼하고, 삐쭉빼쭉한 튀김옷을 입은 새로운 돈가스는 부먹이 아니라 찍먹, 소스를 끼얹는 것이 아니라 곁에 놓은 소스에 그때 그때 찍어먹는 식이었다.


마카로니 샐러드, 파슬리, 당근은 없지만 다량의 양배추 샐러드가 곁들여졌다. 양배추는 어떻게 썰었는지 아주 가늘어 입안을 간질이며 사각거리는 것이 장난스러웠다. 우동을 파는 캐주얼한 일식을 파는 식당들에 이런 돈가스가 나왔는데, 획기적인 것은 끝까지 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엄마가 집에서 고구마튀김을 해 줄 때 보았던 프라이팬 한 구석의 철망 같은 것이 접시 위에 놓이고 그 위에 뜨끈한 돈가스가 얹어졌는데, 돈가스 바닥과 그릇 사이에 공간이 생기니 돈가스가 눅눅해지지 않았다. 돈가스가 다 식도록 천천히 먹는 나도 마지막 한 입까지 바삭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 작은 철망 하나가 만든 그릇과 돈가스 사이의 1센티, 그 거리 덕분에 나는 돈가스의 온전한 맛을 천천히 꼭꼭 씹어 오랫동안 즐길 수 있었다.


건강한 거리가 필요한 때


이 1센티가 필요한 순간은 돈가스를 먹을 때 말고도 많다. 친하지도 않으면서 주말에 남자친구와 무얼 했는지 사적인 질문을 서슴지 않는 상사와도, 동문이라는 이유로 ‘너는 내 라인’이라는 식의 일종의 소유 비슷한 것을 하려 했던 선배와도, 모임에서 잠시 말을 섞은 게 전부인데 SNS에 친구 신청을 하고서 하루 종일 사소한 농담을 하는 누군가와도 조금은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그저 그들과 나 사이엔 내가 눅눅해지지 않을 만큼의 적절한 거리가 필요한 것뿐이다. 그들에게 내가 보이고픈 것은 바삭한 모습이지, 눅눅한 튀김옷이 찢겨 나가 노출된 고깃덩어리가 아니다. 밀착하려 다가오면 나는 멀어지고만 싶다. 내 안을 빠져나간 습기가 다시 내 몸으로 돌아옴을 느끼는 순간, 직관적으로 나는 저 멀리 달아나고 싶다.



직장을 잘 다녀온 친구가 있다. 사교성이 좋아 누구나와 잘 어울리고, 타고난 감각도 좋은데다 트렌드에도 밝은 친구는 요리를 즐기기 시작하더니 지방에 작은 브런치카페를 해 보려 계획을 세웠다. 엄청난 부와 명예가 아니더라도 그지역에서 자란 신선한 재료들을 예쁘게 손질해 보기 좋고 맛도 좋은 건강한 음식을, 느낌 있는 가게에서 즐기는 경험을 선사하려는 것이다.


나는 적극 찬성했다. 숨 막히는 직장 생활에 꺼져가던 마음의 불씨가 살아나는 것이 느껴지니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뻔한 이야기지만 그녀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젊은 우리에게나 레스토랑이고 카페지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밥장사 커피장사였고, 멀리 해외에 대학원까지 보내 놨더니 ‘고작’ 장사’나’ 하겠다는 실망감을 만날 때마다, 그리고 전화로 표출하신단다. 남 보기에 그럴싸한 직장의 타이틀이 중요함을, 그리고 부모님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미래 계획에 대해 친구는 기운을 잃고 축 쳐져 나타났다. 눅눅해진 튀김옷 같다. 친구와 친구의 부모님 사이에 돈가스 철망을 하나 슬쩍 갈아주고 싶어 졌다.


영화 맘마미아


또 다른 친구는 한 달 전 출산을 했다. 두 시간에 한 번은 젖을 물려야 하고, 자는 아가가 깰 까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작은 인기척에도 총알같이 뛰어가는 것을 보니, 우렁찬 소리로 카페에서 수다를 떨어대 함께 눈총을 받던 친구는 어디로 갔나 싶었다. 그녀는 한 생명을 가슴에 품고 젖을 먹이는 의젓한 엄마였다.


이 아이는 목을 가누고, 걷고, 뛰고, 친구와도 놀고, 유치원과 학교에도 가며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엄마와 살을 맞대고 밀착해 있는 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사생활이 생길 것이며 엄마는 모를 삶의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영화 맘마미아에서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엄마가 부르던 노래 Slipping Through My Fingers. 자식은 그렇게 부모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 그 거리를 부정하려 하면 누군가 하나는 눅눅해질 자신을 직감하고 한 걸음 더 물러나고 만다.


그 간격이 있건 없건, 어쨌든 우리 모두는 부모라는 고마운 그릇 위에 곱게 올려진 요리라는 데엔 변함이 없다. 철망을 깔아 1센티 멀어진 그릇은 돈가스가 훨씬 제 맛을 오랫동안 살릴 수 있게 도울 뿐이다. 오랜만에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으며, 이 건강한 거리가 주는 1 센티의 즐거움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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