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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Jun 04. 2024

공동체의 핵심 가치는 '너의 이익이 나의 이익'


  우리는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그런데 그 말을 쓰는 사람의 입장과 전공에 따라 의미는 달라집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공통의 가치와 정체성을 가지고 특정 사회문화적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사용하는 공동체의 개념이나 학자나 행정가들이 사용하는 공동체의 개념은 상이합니다.


  일반 시민들이 공동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마침 ‘공공 근로와 지역 공동체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여기에 다양한 댓글이 달려 있었는데 ‘비슷한 거야’, ‘공공 근로는 시(市)에서 주관하고 지역 공동체는 도(道)에서 주관하는 것인 거 같아’, 그러나 ‘지역 공동체가 더 힘들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는 지역 공동체는 ‘공공복지’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학자들이야말로 다양한 주장을 하지요. 대표적인 공동체주의자로 알려진 마이클 샌델은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를 둘러싼 논쟁을 소개하면서, 이 세 가지의 ‘반성적 평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샌델은 공동체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유보적, 균형적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샌델이 주장하는 공동체 개념은 분명합니다. 어떤 가치를 인정하는 것보다는 ‘더 좋은 사회를 위한 개선’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연대적 의무’가 있어야 하고 이것이 공동체주의라고 하는 것이지요.


  행정가들은 공동체를 사전적 의미로 이해하고 있지만, 좀 구체적으로는 ‘나‘에서 ’ 우리‘로 관심의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고 우리끼리를 뛰어넘어 ’ 우리 모두‘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017년 2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 지구 공동체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페이스북이 인공지능을 동원하여 100억의 인구가 공동체에 가입하도록 한다는 것이지요. 서로의 의견뿐 아니라 ’ 전체적인 사람됨‘을 서로 알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저커버그의 제안에 대해 “전체적인 인간으로서 서로 알기란 극히 어렵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체를 통한 직접적인 상호 작용이 요구된다.”라고 반론을 제기하면서, 한마디로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라고 규정합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민주주의를 제한할 수도 있으나 공동체주의는 ’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는 정치를 구현한다 ‘는 점에서 마이클 샌델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주장했듯이 ’ 너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이다’라는 공동체주의의 핵심 가치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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