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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Jun 17. 2024

다시 읽는 소설 <은교>


  <은교>는 박범신 작가가 쓴 장편소설로서 2010년에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유명한 작품입니다. 박범신 작가와 개인적인 인연도 있어 그 소설이 출판되자마자 바로 읽어보았습니다. 소설의 줄거리를 피상적으로 관찰하면 70살 가까이 된 노인과 그를 보필하는 30대 후반의 작가, 그리고 10대 여고생 은교가 얽혀 있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소설은 ‘노인과 소녀의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을 주제로 한 원색적인 욕망에 관한 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는 노시인을 통해 ‘원색적 욕망을 기피하고 외면하고 관심 없어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 소설 내용 중 “여성에게 있어 연애는 영혼으로부터 감각으로 옮겨 가지만 남자에게 연애는 감각으로부터 영혼으로 옮겨 간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이 눈에 띄길래 여러 지인에게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으며 공감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저 역시 새삼 사랑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지요. 작가는 소설 속에서 사랑에 대해 “한없이 빼앗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내 것을 해체해 오로지 주고 싶은 욕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에도 원형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감정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랑, 참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주제지요. 타인으로 만나 단 몇 초 만에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마술 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연애 초기에 누구나 겪게 되는 ‘길가의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과도한 몰입의 시기에는 고통조차도 황홀합니다. 그러나 황홀한 시간은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 후론 짧은 황홀의 대가를 치르듯 긴 고통의 시간이 뒤를 잇기도 하지요.


  지난주에, 결혼한 지 40년 된 부부가 주말마다 전국의 산사(山寺)를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얘기를 듣고, 아! 이것은 어떤 감정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40년, 50년 같이 지낸 부부는 상대에 대한 설렘이 더 이상 없을 수도 있지만 사랑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은 탐색, 콩깍지, 몰입, 설렘, 조바심, 그리고 그리움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화롯불처럼 뭉근히 시작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감정이나, ‘사랑하는 것’은 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은교>에서 노시인과 같은 깊은 성찰과 균형, 침묵과 절제가 모두 필요하겠지요.


  우리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사랑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


  박범신 작가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면 누가 아침 이슬에 경배하겠는가?”라는 말로 우리에게 무거운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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