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그제 두 번에 걸쳐 사랑의 담론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사랑의 담론에 대해 해답 없는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인생에도 정답이 없듯이 사랑에도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 생각과 의지, 성격과 성향, 환경과 인생의 계기에 따라 사랑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겠지요.
사랑을 감각적이거나 육체적인 욕망에 초점을 맞춘다면 시간이 지나고 상대를 더 많이 알수록 신비스러움은 사라지고 싫증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토라짐과 권태, 그리고 불안을 거치면서 상대를 더 많이 파악하고 적응하고 나면 어떤 깨달음이 생기고 이런 아픔을 공유하면서 더 진정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사랑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한다고 믿는 그 사람(연인일 수도 배우자일 수도 있는)은 모두가 조금씩 ‘잘못되어 있는 것’이 정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얘기했지만 사랑은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나의 연인들이 없었다면 나는 훨씬 더 편협해졌을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소유욕이나 탐욕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모진 고초를 치렀던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생은 ‘인생 쪽에서 던져오는 다양한 물음에 대해 내가 하나하나 답해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것을 사랑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상대가 던지는 물음, 바람 등에 하나하나 답하고 대응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갈등도 있을 수 있지만, 많은 배려가 작용해야 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노력하고 만들어 가야 합니다.
만일 상대가 던지는 물음에 대응할 의지가 사라지게 되면 사랑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사랑은 헤어지는 과정까지를 포함시켜야 합니다. 이별 뒤에도 ‘정말 괜찮은 사람과 만났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또 느껴야 합니다. 삶에는 생로병사와 같은 사계절이 있듯이 사랑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으니, 이러한 변화에도 대비해야 하고, 특히 이별이나 종말도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합니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사랑에는 단계가 있는 것 같고 저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I know you → I like you → I love you → I need you → I am in you라는 순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확실하지 않은 것은 need와 love의 순서입니다. 당신이 (정신적으로) 필요하니까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니까 더욱 필요한 것인지는 구분하기가 어렵네요. 그래서 사랑에는 해답이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