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반복되는 질문을 통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이끌어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해 직접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에 대해서 상대가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을 끌어내어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눈 사람 중 많은 사람이 “자꾸 질문만 하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라고 독촉했지만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시치미를 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답게 살려면 캐물어라, 캐묻는 것이 사람다운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압축한 문구가 “캐묻지 않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캐묻지 않는 삶이란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사는 삶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다운 삶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습관에 따르는 삶은 동물에게도 가능하다고 혹평합니다. 그리고 외부에 맡겨진 삶은 노예의 삶이라고도 했지요.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얘기지요.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5월 불경죄로 고소되어 재판을 받고 한 달 뒤에 독배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이 우리 시대에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며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다이몬(악령)들을 믿음으로써 불의를 행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배심원들에 의해 사형이 결정되었지만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배심원들을 설득하여 무죄로 만드는 것보다는 진실을 알리는 것을 시도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이 간수를 매수해서 그를 다른 나라로 빼돌리려 했지만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거부했습니다.
탈옥을 간청하는 친구들에게 “다른 나라로 떠날 자유가 허락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70 평생을 아테나이에 머물렀는데 이것은 내가 이 나라의 법을 따르기로 약속한 탓이 아닌가? 내가 이 나라에 머무는 것은 자발적인 일이다.”라면서, 나라와 맺은 약속을 어기는 것은 나라에 큰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재판정에서 “죽어도 좋다.”라고 큰소리를 친 소크라테스로서는 탈옥은 상상하기 어려웠고, 자신의 논리를 고수하기 위해서 독이 든 술잔을 들이켜고 죽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와 관련하여 ‘악법도 법인가’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명시적으로 그런 말은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크리톤>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비록 법에 따르는 판결이 잘못된 결정이라도 그것에 불복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다.”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그만두는 대가로 무죄 방면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죽음을 감수하고 철학을 하겠다.”라고 단언한 것이지요. 이에 대해 고대 그리스 철학을 연구한 조대호 교수는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합법적인 것과 옳은 것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고 해석했습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 연구의 핵심이며 이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정치에서도 고민거리가 아닐까요?
‘악법도 법인가’와 더불어 꼭 짚고 넘어갈 것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입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소크라테스 철학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의 신전 기둥에 새겨진 것으로 소크라테스가 자주 언급한 문구입니다. 이는 말 그대로 ‘나에 대한 앎’을 뜻하는데, 삶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한다면 이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과 같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스스로를 깨우치지 못한 채 남 앞에 서겠다고 나선다면’ 그 결과는 알 만하지요. 우리가 종종 목격하는 상황입니다. (후기: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멜레토스는 사형을 당했고, 다른 자들도 추방되었습니다. 이들이 쫓겨난 뒤 오히려 소크라테스를 다시 추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