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월의 마지막 날, 지난주에 우수가 지났고, 닷새 후면 경칩이 옵니다. 절기로 봐서 봄의 입구에 들어선 것이 분명합니다. 아직 완연한 봄이 아닌데도 봄 얘기를 서둘러하는 것은 봄은 짧아서 더 애잔하기 때문입니다. 봄이 뿜어대는 치명적인 매혹에도 불구하고 봄은 슬픔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빨리 와서 또 그렇게 빨리 가는 것을 가르쳐 주는 봄은 마치 매정한 애인과도 같지요.
이해인 시인은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겨울에도 봄, 여름에도 봄, 가을에도 봄”이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언제라도 봄”이라고 했어요.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박완서 선생님이 타계한 지도 벌써 13년이 지났습니다. 그분은 섬진강의 봄을 이렇게 예찬하였지요. “화창한 봄날이었다··· 버스도 더디고 봄날도 더뎠다. 황혼이 마냥 길게 꼬리를 끌고 도무지 깜깜해질 줄 몰랐다. 옆구리에 섬진강을 낀 길은 아마 밤새도록 그만큼밖에 안 어두워질 것 같았다. 멀리 가까이에서 벚꽃인지 배꽃인지 모를 흰 꽃들이 분분히 지고 있었다··· 그 고장의 황혼이 그토록 길고 유정한 것은 달빛 때문도 낙화 때문도 아니라 섬진강의 물빛, 모랫빛 때문이었구나, 비로소 알 것 같았다.”라고요.
두 작가가 예찬하듯이 봄이라는 계절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안겨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인생의 덧없음과 유난히 닮아있습니다. 분분히 흰 꽃들이 지는 봄밤 물풀의 나무를 닮은 여인 같은 외로움에는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슬픔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봄은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그 봄이 곧 우리 곁에 당도할 것입니다. 새봄을 맞는 부푼 희망과 더불어 마음 한 자락 영원히 남아 있을 아름다운 추억도 이 봄과 함께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