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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Mar 06. 2024

''오로지 주고 싶은 욕망이 사랑이다 ''


  글을 오래 쓰니까 옛날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게 됩니다. 오늘은 중학교 후배이기도 한 소설가 박범신 씨의 <은교>라는 장편소설에서 군데군데 명문장을 찾아보았지요. 좋은 구절이 많지만 특히 관심이 가는 대목은 “여성에게 있어 연애는 영혼으로부터 감각으로 옮겨 가지만 남자에게 연애는 감각으로부터 영혼으로 옮겨 간다.”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면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굳이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연애의 완전한 형태는 ‘영혼의 교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사랑에 대해 “한없이 빼앗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내 것을 해체해 오로지 주고 싶은 욕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에 원형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감정일 것입니다. 타인으로 만나 단 몇 분 만에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로 마술 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연애 초기에 누구나 겪게 되는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는’ 과도한 몰입의 시기에는 고통조차도 황홀하지요. 그러나 이 황홀한 시간은 안타깝게도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짧은 황홀의 대가를 치르듯 긴 고통과 아픔의 시간이 이어지기도 하지요. 그래서 사랑하는 일에 정답이 없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부부 사이처럼 상대에 대한 설렘이 더 이상 없다고 사랑의 불씨가 꺼진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은 콩깍지, 몰입, 설렘, 조바심, 그리고 그리움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화롯불처럼 뭉근히 시작되는 것이겠지요.


  우리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박범신 작가의 말대로 그것을 깨닫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사랑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 ”사랑을 믿지 않는다면 누가 아침 이슬에게 경배하겠습니까 “,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려고 뛰어본 적이 있는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자를 향해 뛰고 있는 사람은 다 아름답다.”라는 소설 속 작가의 말은 그래서 오늘따라 새롭게 다가오네요.


  어제가 경칩이었습니다. 메말랐던 나뭇가지에 새싹을 틔우고 나뭇잎은 점점 푸르게 되겠지요. 우리 모두 자기만의 진정한 사랑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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