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열린 실버 센류(川柳,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 중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88편의 시를 모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절제된 짧은 음절 속에 담겨 있는 해학, 재치, 은유, 역설, 순수, 그리고 성찰과 통찰“까지 담아낸 시들을 통해 나이 든 사람들의 마음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를 읽어 가면서 이것은 아버지 이야기, 이것은 어머니 이야기, 그러나 언젠가는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중에 몇 편을 골라 소개합니다. 시를 읽으면서 웃음이 나오지만, 그 웃음의 끝은 눈물이 되어 두 눈을 무겁게 만들고 있네요. 6편을 소개하겠습니다.
73세의 어느 남성은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었네 “
흔히 나이 든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휴대폰을 찾으러 다닌다든지, 무엇을 하려고 일어났는데 왜 일어났는지를 깜빡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65세의 어느 여성은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 들은 병명
‘노환’입니다 “
나이가 들면 아픈 데가 많습니다. 이유를 잘 찾지 못하지요. 아픈 곳을 설명하면서 ‘이게 무슨 병일까?‘하고 물으면 바로 답변이 나옵니다. ’ 나이 먹어서 그렇지요 ‘
73세의 어느 남성은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네 “
그동안 삶의 관성으로 무슨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막상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쉬시게 하는 것보다는 무슨 일이든지 하시게 해야 합니다.
68세의 어느 남성은
”만보기 숫자
절반 이상이
물건 찾기 “
조금 전에 사용한 휴대폰을 어디에 놓았는지 온 방을 다 뒤집니다. 방 안의 불을 다 끄고 외출했는데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불을 끄지 않은 것 같아 다시 집으로 들어갑니다.
66세의 어느 남성은
”몇 줌 없지만
전액 다 내야 하는
이발료“
유전적으로 젊어서부터 머리가 빠지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나이가 들면 머리가 빠집니다. 그러나 이발료는 머리숱이 무성할 때와 같은 값을 내지요. 속 모르는 사람은 저 정도 머리밖에 없는 사람이 왜 이발소에 가는가 의아해하지요.
71세의 어느 남성은
”젊게 입은 옷
자리를 양보받아
허사임을 깨닫다 “
오늘은 특별히 신경 써서 젊어 보이는 옷을 입고 나갔지만 그 옷은 나이를 숨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위 시들은 나이 든 사람들의 특징을 담아냈습니다. 흔히들 나이 든 사람들을 단풍과 나목(裸木)에 비유합니다. 화려한 꽃과 무성한 잎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칭송받고 서로는 경쟁하고 있지만 단풍과 나목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 봐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롯이 열매 맺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어느 분은 사람이 맺는 열매는 지혜를 통해서라고 했습니다. 지혜를 쌓고 지혜를 주는 것이 나이 든 사람의 특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