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 계절이지요. 따라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을을 예찬한 글과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도 윤동주 시인의 <가을밤>은 많이 애송됩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는 시이지요. 가을밤의 고요함 속에서 별을 매개로 순수한 감정들을 불러내는 시입니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 기도>도 유명합니다.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그 짧은 생을/ 아름답게 마감하게 하소서”라는 시인데 인생의 황혼과 가을의 끝을 겹쳐 보는 성찰적 기도문이 되겠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가을을 찬미하는 시도 많이 있습니다. 존 키츠의 “안개의 계절이자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여/ 무르익는 태양의 친한 벗이여”라는 <가을에게>라는 시가 있는데 자연의 순환 속에서 생명과 죽음의 조화를 찬미한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입니다. 언젠가 짧게 소개했지만, 라이너 릴케의 <가을>은 “나뭇잎이 떨어진다”로 시작됩니다. “마치 멀리서 떨어지듯/ 그들의 시듦은 하늘에서 오는 듯하다”로 이어지지요. 존재의 유한함과 그 속의 아름다움을 묵상한 시로 가을을 ‘떨어짐’으로 등치 시킨 릴케의 표현은 많은 사람들이 외우는 구절입니다.
가을을 정확하게 표현한 글로는 피천득의 <가을>이라는 수필에 나와 있습니다. 피천득은 가을은 ‘생각의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고도 했는데, 그 결실은 들판의 것이 아니라 마음의 것이라고 했지요. 많은 수필 중에서 명문으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외적인 풍요보다 내적인 성숙을 강조한 것이지요. 서양 사람들이 짧지만 가장 널리 인용되는 가을 문장 중 하나는 알베르 카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제2의 봄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낙엽을 죽음이 아닌 다른 형태의 생명으로 바라본 낙관적인 철학이 반영된 문장입니다.
일주일 전, 6.25 전쟁 전까지는 북한이 관할하던 수복 지구인 고성으로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왼쪽에는 동해 바다의 망망한 대해가 펼쳐있고, 오른쪽에는 자그만 호수를 볼 수 있었습니다. 호수가 평화로워 보여 잠시 그 호수에 눈이 머무는 순간, 지난 시간들이 스쳐 갔는데, 어리석은 말, 불필요한 욕망, 놓쳐버린 인연들이 호수 위에 아른거렸습니다. 거기에 가을의 빛은 제 상념을 부드럽게 만져주고 있었습니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구절처럼 그 기도는 결국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성찰의 끝에서는 우리는 더 이상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깊어 가는 가을에 이러한 자기 성찰을 통해서 떨어져 버린 잎에서도 새로운 생명의 약속을 볼 수 있듯이 가을은 소멸이 아니라 시작을 예고하는 순환의 계절임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