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홍철 Mar 26. 2024

비 오는 날에 듣는 첼로 소리

 

  어제는 오후 내내 비가 왔습니다. 그러니까 지인 중에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분이 생각났습니다. 그분은 감성이 풍부한 나이도 아닌데 비 오는 날이 좋다는 얘기를 하지요. 오랜만에 그분을 만났는데 “요즘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느냐”라고 물으니 요즘은 바뀌었다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건물에 비가 새는데 기술자에게 진단을 해도 비 새는 원인을 찾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만 오면 불안하다고 하면서 빗소리를 즐길 만한 여유를 잃은 것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비가 오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마음 한편에 잠재워두었던 감성이 되살아나는 것은 사실이지요. 특히 비 오는 날 방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이성복 시인의 시구절이 생각납니다. “··· 누군가 내 삶을 /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 아프도록 멀리 있는 / 것이 아니라 / 있어야 할 곳에서 / 내가 너무 멀리 / 왔다는 느낌”이 유독 강력해집니다.


  비 오는 날에는 첼로 곡이, 맑은 날에는 피아노 곡이 분위기에 맞다는 나름의 감상법을 갖고 있습니다. 첼로는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유사한 악기로 꼽히곤 하지요. 바흐의 무반주첼로조곡은 내로라하는 수많은 연주자가 연주했지만, 96세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평생을 일과처럼 그 곡을 연습했다는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를 백미로 꼽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굵직한 중저음의 첼로 소리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세련된 기품을 간직하고 있는 곡이지요.


  비 오는 날 유리창에 부딪혀 이슬방울처럼 흩어지는 빗물을 바라보며 그 곡을 듣고 있노라면 불현듯 창밖 풍경과 비와 음악과 나의 가슴이 일체가 된 듯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감동에 빠지곤 합니다.


  아직 우기에 접어들진 않았지만 비가 자주 내리는 계절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비 새는 걱정은 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비 오는 날이 좋습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안주인 ‘포장마차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벗 삼을 수도 있고, 연구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자연이 선사하는 소리들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시고 마음의 평정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 한 사람'이 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