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취업난이 문제라지만, 그와 동시에 어렵게 입사한 직장을 때려치우는 신입사원들의 퇴사도 적지 않다. 이유가 뭘까.
기업들의 단체인 경영자총연합회(경총)가 지난 2016년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7.7%로 2014년 조사결과인 25.2%보다 2.5%p 높아졌다. 대략 신입사원 10명 중 3명은 1년 이내 회사를 그만뒀다는 얘기다.
경총의 2016년 조사 결과를 좀 더 자세히 보면, 기업규모가 작은 경우 퇴사율이 더 높았다. 300인 이상 기업의 퇴사율은 2014년 11.3%에서 2016년 9.4%로 소폭 떨어졌지만, 300인 미만 기업의 퇴사율은 2014년 31.5%에서 2016년 32.5%로 다소 올라갔다. 큰 회사보다는 작은 회사에서 신입사원들이 사표를 더 많이 냈다는 의미다.
취업정보업체 잡코리아가 2018년 9월에 신입사원을 채용한 국내 중소기업 인사담당자 2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복수응답)에서도, 전체 신입사원 퇴사율은 평균 30.2%로 집계됐다.
경총이 2017년에 전국 312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졸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결과를 보면, 기업 규모에 따라 아예 취업경쟁률이 다른 것도 파악된다. 300인 이상 기업에서는 2017년 취업경쟁률이 38.5대 1로 2015년 조사 때보다 7.8%가 올라갔지만,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는 2017년 취업경쟁률이 5.8대 1로 2015년보다 12.1%나 떨어진 것이다.
취업난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스스로 뛰쳐나온 신입사원들이 10명 중 3명이나 된다는 것은 예삿일로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대체 왜 퇴사를 감행한 것일까?
잡코리아의 2018년 9월 조사로 파악된 신입사원들의 퇴사 이유는 ‘연봉이 낮아서’(38.5%)가 가장 많이 꼽혔다. 그 뒤를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25.7%) ▲실제 업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서(23.0%) ▲회사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해서(21.6%) ▲중복 입사지원 했던 다른 기업에 취업이 확정되어서(17.6%) ▲막상 일을 해보니 업무 강도가 너무 높아서(16.2%) 등의 순서를 나타냈다.
또 다른 취업정보업체 사람인HR 조사에서는 같은 해인 2018년 11월에 약간 다른 비율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인에이치알이 최근 1년간 신입사원 채용을 한 기업 687개사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복수응답)에 따르면 전체 신입사원 중 약 26%가 퇴사했는데 퇴사 사유 1위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무’(48.6%·복수응답)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낮은 연봉 수준(26.4%) ▲업무 불만족(22%) 등이 뒤를 이었다.
경총의 2016년 신입사원 실태 조사에서도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이유는 1위가 ‘조직 및 직무적응 실패’(49.1%)였고, 뒤를 이어 ‘급여 및 복리후생 불만’(20.0%), ‘근무지역 및 근무환경에 대한 불만’(15.9%) 순서를 보였다.
그런데 퇴사에 불을 댕긴 요인이, 낮은 연봉인지 적성에 안 맞는 일인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내 경험에 의하면 퇴사 결정은 몇 가지 요인이 뒤섞여 종합한 결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회사생활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서 중간지점인 50점 밑으로 내려가는 순간 퇴사 결단을 내린다고 치면, 50점에서 1점을 까먹는 순간이 퇴사여부를 가르는 결정적 지점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전에 회사생활을 하면서 마이너스 점수들이 착실히 누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직장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인들은 위 설문조사 답변 항목처럼 낮은 연봉이나 적성에 안 맞는 직무 하나만 꼽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봉이나 적성 문제와 함께 우리를 괴롭히는 직장의 문제로는 회사 분위기가 지나치게 군대식으로 경직된 분위기라든가, 사이코패스 같은 상사나 동료가 있다든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객들의 갑질이 심하다든가 하는 것들도 있다.
일터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도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이 2018년 12월말에 발표한 ‘퇴사, 일터를 떠나는 청년들’에서는 “기존 퇴사담론에서 퇴사란 여행, 쉼, 자기계발, 경력 관리의 분야에서 다뤄지며, 퇴사 사유나 원인은 개인이 해결하거나 해소해야 할 것에 그치고 있다”며 “구조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등과 같은 저임금 및 불안정한 노동 구조에 대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고 이러한 청년들의 퇴사는 은폐된다”는 점을 꼬집는다.
새사연은 이 보고서에 1985~1999년생 청년 21명(여성 11명, 남성 10명. 고등학교 졸업 7명, 전문대 졸업 3명, 4년제 대학 이상 11명)과 심층 면담해 분석한 내용도 담았는데, 여기에 우리나라 직장 현실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고서에 의하면, 사회에 나오기 전 학교는 청년들에게 현장 실습생이나 인턴 등 임시 노동자 경험을 권장해 노동시장이 청년들을 일회용 노동자로 여기는 관행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울러 청년들은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일을 지시하고 모욕적인 말을 하는 상사를 자주 만났으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제대로 저항하기 어려운 폭력적인 조직 문화에도 노출됐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고 이른바 ‘블랙기업’ 같은 곳에서 일하다 보면 청년들은 어느 샌가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묻게 된다.
또한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해고 불안감에 시달리며 조직 순응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다 보면 더 이상 조직에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결국 소진되거나 무력감에 빠지고 만다. 청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과 일터에서 원하는 ‘일 잘하는 사람’의 상이 맞지 않고,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상의할 선배도 동료도 없으며, 있다 해도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로 만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들이 내뿜는 유독성 에너지의 복합 효과로 신음하며 버티던 중 누가 울고 싶은 나의 뺨을 때려주는 상황이 닥친다? 그러면 이를 계기로 인내심이 폭발하면서 마지막 힘을 짜내어 사표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으니까.
새사연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청년층의 노동 관념이 바뀐 것이 아니라, 일터 문화가 너무 변하지 않은 것”이라고 진단한다. 대다수 청년들이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의 처우와 관계 맺음을 원했으나 실제 일터에서는 이런 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사연 연구팀이 청년 퇴사 문제와 관련해 제시한 대안은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해볼 문제다. 연구팀은 ‘퇴사해도 괜찮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학교는 취업이 아니라 진로 교육으로 초점을 전환해야 하고, 청년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생애주기에 따르는 삶보다는 다양한 삶의 경로를 상상하고 살아갈 필요가 있으며, 학교와 직장에서는 노동인권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또한 인력 부족으로 인해 유명무실한 근로감독제도를 정상화하고, 직장 내 괴롭힘 보호 장치 도입이 필요하다고 봤으며, 부당해고 구제, 구직급여 수급사유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 등도 거론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고도 불리는 세계 3위 부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회사 연차보고서에 “만약 당신이 만성적으로 물이 새는 배에 타고 있다면, 새는 곳을 수리하기 위해 들이는 에너지보다 다른 배로 바꾸는 데 들이는 에너지가 더 생산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투자자나 기업들에게 사업부나 투자대상이 영 시원치 않으면 갈아타는 게 나을 거라고 썼을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직장인들이 근무하는 일터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지적이다.
갈아타기 전 물이 새던 배와 비교해 새로 바꾼 배가 더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두렵기는 하겠지만, 가라앉는 배에서는 일단 내려야 목숨을 건질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