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ica Jun 17. 2019

회사 탈출러의 경쟁력 찾기

얼마 전에 현재 IT기업 홍보담당자로 20년 이상 근무하면서 은퇴하면 IT 분야 작가가 되고 싶다는 한 대기업 부장님을 만났다.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인사를 하게 됐는데, 그 분은 다니는 회사가 제조하는 어려운 IT 관련 제품을 쉽게 풀어서 보도자료를 쓰고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은퇴하면 이런 특기를 살려서 IT분야 전문 작가로 살고 싶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내가 경제/금융/증권기자를 그만두고 재테크 전문 작가로 1차 은퇴를 했다는 얘기에 부장님은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벌써 실행해서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날 줄 몰랐다며 너무나 반가워하셨다. 자녀의 학교 졸업 시기 등을 고려해 은퇴 시점을 몇 년 이후로 잡고 있다는 그 부장님은 현재까지는 번역대학원에서 번역을 공부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 부장님에게 쓰고 싶은 내용의 칼럼 연재물을 기획해 보고, 재직 중인 회사 사보에 연재를 해보시라고 말씀드렸다. 홍보팀장이니까 사보에 어떤 콘텐츠를 실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있고, 따라서 본인이 준비만 돼있다면 기명칼럼을 은퇴 전에 만들어 볼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었기에 드린 조언이었다. 


더불어 홍보업무를 오래 한 만큼 언론매체에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 많으니까 언론에도 칼럼 연재를 추진해보시라고 했다. 책을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초보 작가가 출판사 출간이라는 벽을 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괜찮은 칼럼을 연재한 경력을 쌓은 인물이라면 출판사에서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글 솜씨나 성실함의 증거로 인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언이기도 했다. 


내 얘기를 들은 부장님은 무릎을 탁 치시며 이런 생각을 미처 못해봤다며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고마워하셨다. 매일 쳇바퀴 돌 듯 조직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아이디어를 전혀 떠올리지 못하셨다면서 말이다. 


은퇴 이후의 제2의 후반생을 꿈꾸면서도 여기 이 부장님 같이 현재 시간을 막연히 흘려보내기만 하는 분들이 아마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나 자신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해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제2의 인생은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이 부장님이나 나처럼 본업과 연관된 일로 회사 탈출 후 새 직업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다른 직종에서 새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경제적인 준비를 마친 후 조기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보면 경제적인 준비 쪽보다는 제2의 인생 쪽에 방점이 더 찍혀있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참고할 만한 부분이 적지 않아 몇몇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이민희 작가가 직업을 전환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모아서 쓴 『회사를 나왔다 다음이 있다』에서 골라봤다. 


음반회사에서 8년간 일했던 김민정 씨는 빈티지 조명, 즉 램프를 좋아해서 취미로 전 세계에서 곳곳에서 사서 모으다가 램프가 쌓이고 쌓여 창고가 터져 나갈 상태가 되자 빈티지 램프 전문 온라인숍을 열고 램프 장사에 나서며 자연스럽게 직업을 바꿨다. ‘시작하자마자 대박’이라는 드라마 같은 스토리는 아니고, 취미 수집을 넘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부담이 들어서 새로운 램프 물건을 계속 사들이고 있어서 버는 것 이상으로 쓰느라 넉넉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리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 않아서 기존 직업이던 음악 관련한 일이 조금씩 들어와서 외주로 업무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경력과 관련 없는 아르바이트도 한다고 한다. 


김호영 씨는 웹에이전시에서 일을 시작해 지마켓에서 웹디자이너로 5년간 근무하다가 가죽공방을 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던 중 우연히 가죽공예 수업을 듣게 됐다가 그 매력에 빠져버린 케이스였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주말마다 일본을 오가며 가죽을 배웠고,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가죽공방을 열었고 자체 브랜드도 만들었다. 온라인 쇼핑몰 마케팅실에서 일하면서 거래와 홍보의 기본을 배운 덕분에 가죽 사업에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작은 공방에서 벗어나 공장에서 가방 등 자체 브랜드 가죽제품을 제조하는 어엿한 사업가가 됐다.  


휴대폰 단말기업체에서 안테나 설계와 튜닝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17년간 일했던 김혜진 씨는 퇴사 후 플로리스트로 변신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 취미 삼아 주말마다 꽃을 배우고 꽃 사진을 찍었는데 마흔에는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꽃을 10년 동안 익히면서 천천히 미래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회사가 어려워져서 구조조정이 심화되는 시기가 닥치자 이제 때가 왔다는 생각에 그동안 모아놓은 자금과 퇴직금으로 가게를 얻어서 꽃 작업실을 열었다. 수강생에게 꽃꽂이를 가르쳐주는 일이다. 김혜진 씨는 회사 다닐 때보다 적게 벌지만 지금 생활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한다. 원하던 일과 자유를 함께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직장생활을 하면서 즐겼던 취미가 새로운 직업의 기반이 됐다는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 제2의 직업으로 고르기도 했다. 또한 새 직업으로 넘어가기까지 비교적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자신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과정을 거친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회사 탈출러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준비과정을 이들은 착실히 거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떼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했다는 점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청년들은 왜 퇴사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