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매여 월급 중독에 허우적거리는 배경은 따지고 보면 소비가 문제다. 과도한 소비가 자꾸 우리가 돈을 쓰게 만들고 우리를 위해 잉여자본을 남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덫에 걸린 것이다.
우리가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과 높은 지위에 끌리는 욕망을 충족시키고, 급기야는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려고 소비에 나서는 모습을 작가 폴 로버츠는 저서 『근시사회』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소비하는 배경은 미국 자동차업체 제너럴 모터스가 사회학자와 심리학자, 심지어 프로이트식 분석가까지 고용해 ‘물건을 살지 말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역동적 역할을 하는 온갖 내적 조건들’을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고 한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단지 새로움이나 지위 향상 때문만이 아니라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고 ▲평범한 결혼 생활에 대한 실망감을 누그러뜨리고 ▲사무실 업무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고 ▲지겹고 숨 막히는 순응적인 교외 생활에서 벗어나고 ▲나이 들고 병약해서 받은 모욕감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구입했다.
‘어머 이건 사야해’라며 이런저런 소비에 당신이 월급을 탕진하고 있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어떨까. 진짜로 당신이 원하는 것인가? 프랑스 철학자 라캉은 말했다. 우리는 남들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따라서 하는 것뿐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지도 않는 데에 아낌없이 월급을 쏟아 붓느라 월급의 노예가 되어 회사와 고객의 갑질에 반항 한번 못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비하고 또 소비하면서 우리의 회사 탈출 시기를 하루하루 늦추는 장본인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다.
원래 기업이란 직원들에게 딱 먹고살 만큼 급여를 주고 그 돈으로 기업의 물건과 서비스를 소비하게 해서 이윤을 남기는 조직이며, 이런 시스템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게 자본주의다. 우리는 우리가 어느 상황에 처해있는지 좌표를 시시때때로 확인해봐야 한다. 요즘 드론으로 우리의 주변을 지상위에서 촬영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게 됐는데 땅에서는 아무리 봐도 전체 구도에서 내 위치가 잘 인식되지 않는다. 위에서 아래로 조망을 해야 감이 온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우리가 속한 제도의 그물에 걸린 채 허우적대다가는 그물에 계속 죄여갈 뿐이다.
한번뿐인 인생(욜로)을 즐겨야 한다며 탕진잼에 빠지는 것은 특히나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언젠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해외여행에서는 너무나 즐거웠는데 갔다가 돌아오니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온다’며 우울해하는 글을 봤는데, 이 게시글 댓글 중에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댓글의 주인공은 자기도 현실이 싫어서 월급을 모아서 6개월마다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것이었다. 이 댓글을 쓴 사람이 생계고민 따위는 할 필요가 없는 금수저여서 월급을 용돈처럼 쉽게 써도 되는 사람이었다면 할 말이 없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살면 큰일 난다.
욜로의 본래 취지는 현실을 돌아보자는 좋은 의미였을 텐데, 어쩌다 미래를 무시해버리고 지금 돈을 마구 써버리는 소비형 행복으로 오해가 된 것 같다. 돈을 펑펑 써버리는 행동은 기업의 배만 불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계속 그렇게 살면 월급 중독, 회사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행복은 돈을 쓸 때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학자 교수이자 소비자 문화 비평가인 로버트 린드는 이런 소비행태가 약물치료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소비재가 약물처럼 온갖 종류의 정서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조절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소비는 약물 못지않게 중독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