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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Jul 01. 2019

에피쿠로스 혹은 붉은 돼지

나는 쾌락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로는 이름을 딱히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다. 그리고 쾌락주의라는 용어가 주는 묘한(?) 느낌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는 철학자다. ‘쾌락’이라고 하니까 왠지 매일 파티나 하고 화려하게 살자는 것을 추구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까. 하지만 에피쿠로스와 그의 친구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알게 되면 당신도 호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일하거나 고용관계에 구속되는 것을 거부하며 살았다. 이들은 모여서 생활공동체를 꾸렸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마음 편안한 삶을 누렸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어도 불쾌한 상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살아갈 자유가 있었다.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행복하려면 의식주 해결과 더불어 우정, 자유, 사색 등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않은 쾌락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행복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큰 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음 그래프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한눈에 보여준다. 행복의 등급이 높아지는데 필요한 돈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피쿠로스가 생각하는 ‘친구와 자유 등을 가진 사람의 행복과 돈의 관계’[자료] 알랭 드 보통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생각의나무, 2006)


하지만 나는 이 그래프를 보면서 또 다른 측면도 생각한다. 행복에 필요한 돈이 생각보다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행복에 도달하려면 일정 수준의 경제력이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프를 잘 보면 아무것도 없으면 행복도 0이 되니 말이다. 


큰돈까지는 필요 없지만 우리 인생을 보호할 안전판 수준의 자금은 일정 규모가 필요하다. 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를 보면서도 엉뚱하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주인공인 이탈리아 조종사 포르코가 전투 중에 친구를 잃고 난 후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의 모습(몸은 사람인데 머리 부분만 돼지)이 되어 조그만 섬에 자기만의 아담한 아지트를 꾸며놓고 홀로 비행정을 몰며 현상금이나 타면서 느긋하게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내용을 낭만적으로 그린다.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            [자료]지브리스튜디오 


어느 날 미국 출신 조종사가 싸움을 걸어와 대결하다가 비행정이 크게 망가지자 포르코는 은행에 들러 현찰을 잔뜩 인출해서 친한 비행정 제작자를 찾아가 새 비행정을 주문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문득 돈과 행복의 관계를 보여주는 에피쿠로스의 그래프가 떠올랐다. 


포르코는 국가니 민족이니 전쟁이니 하는 것에 관심 없고 그저 현상금 타고 하늘이나 날아다니며 유유자적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가능한 현실적인 배경은 바로 은행에 맡겨놓은 두둑한 예금인 것이다. 만일 비행정이 망가졌을 때 새로 제작할 예금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낭만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포르코의 스타일도 구겨졌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행복 최대화 지점까지는 어느 정도 자금을 모으는 일이 우리의 행복을 지키는 데 의미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돈이란 무조건 경시할 이유도 없고, 지나치게 소중히 여길 까닭도 없다. 그저 우리가 사는 데 적정한 수준으로는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준비를 해두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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