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일과 인간관계로 스트레스 받은 사람들은 주말이나 퇴사 후에 힐링하고 또 힐링하느라 바빠 보인다.
나를 힐링 시키려고 시발비용(열 받는 일을 겪은 나를 위로하려고 쓰는 비용을 뜻하는 속어)을 투입해서 소비하고 또 소비한다. 해외여행도 가고, 명품백도 사고, 예쁜 카페도 가고, 맛집도 가고,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도 가고, 멋진 피규어도 사고,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나온 신발도 사고….
그런데 이렇게 소비하려면 또 돈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짜증나도 회사에 계속 출근해서 또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다시 소비에 소비를 계속해야 한다. 이런 뫼비우스의 띠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자신이 매트릭스 안에 갇혀있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모피우스를 만나 현실로 나오는 약을 먹고 매트릭스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매트릭스에서 현실로 나왔다가 스스로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이퍼라는 캐릭터도 눈길을 끌었다.
사이퍼는 동료들 몰래 스미스 요원을 만나 매트릭스 바깥 현실세계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며 다시 기계의 사육을 받으며 잠들어 매트릭스 속에서 꿈을 꾸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이번에 매트릭스로 복귀해 꿈을 꿀 때는 부자에다 유명인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까지 구체적으로 하면서 말이다. 현실이 너무 누추하고 고생스러우니 ‘안수정등(岸樹井縢)’ 속 꿀을 맛보며 현실을 잊고 싶다는 게 사이퍼의 소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사이퍼는 영화 속이니까 다시 매트릭스 안에서 꿈꾸며 편안히 누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 힐링이라는 꿀맛을 보며 현실을 애써 외면하지만 우리에게는 언젠가 이 모든 것을 멈추게 되는 때가 닥친다. 대출 받아서 펑펑 쓰다가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로 직장이 사라지는 등 예기치 못한 순간이 닥치면 졸지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파산의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외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이 무서운 현실이라니.
네오는 현실인 줄 알았던 매트릭스 안 세계가 이상하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매트릭스를 탈출하는 단초를 얻게 됐다. 우리도 변화하려면 우리가 처한 상황이 대단히 불안하며 시한부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을 만나야 한다. 매일 별 생각 없이 반복해온 자신의 일상을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아침부터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어디에 돈을 썼는가. 지금 내 생활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이 생활이 언제까지 유지될 것 같은가. 이 생활을 계속 유지하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이런 쳇바퀴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그런데 의문이다. 탕진잼(돈을 탕진하는 재미)에 빠진 채 소비형 힐링을 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과연 이런 순간을 만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