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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Jun 18. 2019

코끼리 털인 척 위장했던 벼룩

회사를 좀 다니다 보면 내가 다니는 회사나 팀에 문제가 있을 경우 이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몇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장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을 때 우리의 선택지>


①잘못된 시스템을 고치려고 분기탱천해 일어선다. 

②정규직/비정규직 직장인 또는 프리터* 같은 것을 하면서 시스템 안에 납작 엎드려 근근이 먹고 산다. 

③시스템 밖으로 나가서 다른 생존 방안을 모색한다. 


*[용어설명]

프리터 : 자유로움을 뜻하는 영어 '프리(free)'와 노동자를 뜻하는 독일어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성한 일본의 신조어. 처음엔 능력이 돼도 직업 없이 평생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회인 아르바이터'를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이후 아르바이트만으로 살아가는 청년을 뜻하게 됐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니까 여기에 정답은 없다. 눈치 챘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택한 것은 ③번이다. 


내가 사회생활 3년차였을 때 찰스 핸디가 쓴 『코끼리와 벼룩』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쉽게 말해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거대한 코끼리와 함께 공존하는 벼룩들’로 변화해 간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벼룩처럼 살고 싶었다. 



종신고용 시대에는 한 직장에 오래있는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회사를 여러 번 옮긴 사람들은 기업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용병처럼 기업에 충성하지 않고 돈에 따라 언제든지 옮겨 다닐 철새라고 여겨서였다. 


하지만 용병도 용병 나름이다. 충성도가 약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비싼 돈 주고서라도 기업이 그 용병을 쓸 때는 이유가 있다. 나는 그런 용병이자 벼룩으로 살아왔다. 벼룩으로 살았던 17년간의 직장생활은 꽤 재미있었다. 회사를 여러 번 옮겼지만 내가 이직을 많이 한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직장은 한 곳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보유한 지식 자산과 성실성을 회사에 충실히 제공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들어 기존 직장에서 더는 내게 필요한 커리어를 쌓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 때면, 혹은 회사 분위기가 썩어 들어가면 말없이 다음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배울 수 있는 뭔가를 지닌 곳을 찾으면 주저 없이 책상을 비웠다. 나는 영민한 벼룩이었다. 


수많은 직장인들은 자기들이 몸담고 있는 코끼리의 팔, 다리, 뼈 정도는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오너 일가붙이를 제외한 모든 직장인들은 그 코끼리의 ‘털’ 정도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아주 많이 덮여 있어 코끼리의 체온을 유지시켜 주지만 몇 가닥 빠진다 해도 코끼리가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는, 바로 그런 털. 임원쯤 되면 그래도 뼈 아니냐고? 글쎄. 그냥 조금 굵은 털일 뿐이다. 굵은 털도 때 되면 털갈이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법. 


일자리 시장에서 선망의 대상이라는 정규직들도 그저 털일 뿐이다. 무려 정규직이나 되는 자신이라면 분명 코끼리의 팔, 다리, 뼈쯤 된다고 오해하는 털이다. 코끼리에 붙어있는 털들은 세상을 오해하기 쉽다. 그냥 코끼리에 붙어있으면 얼마나 편한가. 꼬박꼬박 월급을 내려주시는 고마운 코끼리님. 가끔 굵은 털들이 괴롭힐 때면 다른 가는 털들과 함께 퇴근 후 굵은 털들의 악행을 안주삼아 소주 한 잔 나누다 보면, 그리고 함께 일하는 불우한 비정규직 털들의 상황을 모른 척 하며 사노라면 그럭저럭 시간은 흘러가고 말이다. 


하지만 코끼리는 때 되면 털갈이를 하게 마련이다. ‘털’들은 본인이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코끼리로부터 축출된다. 털은 누가 잡아당기거나, 털갈이 철이 오면 코끼리에서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사회생활하면서 그런 ‘털’ 신세의 선배들을 많이 봤다. 이미 뿌리가 뽑혔는데도 다른 털에 엉겨 붙어서 어설프게 코끼리에 붙어있는 그런 털도 꽤 있었다. 비참해보였다. 나를 털어낸 코끼리한테서 쉽게 떨어져 나오지 못하는, 식솔을 거느린 그 털들의 입장이 딱했다. 


하지만 그 털들은 동시에 답답하기도 했다. 코끼리의 털갈이를 숱하게 봐왔으면서 그 털들은 준비 없이 털갈이를 당하고 울부짖곤 했다. 털어내는 코끼리한테 그 동안 너를 따뜻하게 덮어줬던 내게 이럴 수 있느냐, 어떻게 나를 털어낼 수 있느냐고 울부짖어봤자 이미 때는 늦었다. 코끼리는 원래 그런 존재니까. 그리고 당신은 털 한 가닥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털들은 코끼리가 언제나 털갈이를 하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털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니까. 


나는 점점 벼룩이 되어갔다. 코끼리의 의사가 아니라, 나의 의사에 따라 유랑을 떠나는 즐거운 벼룩! 놀만한 코끼리면 꽤 머물고, 재미가 없어진 코끼리면 미련 없이 다른 재미난 코끼리를 찾아 떠나는 신나는 벼룩! 


사람은 움직여야 할 시기와 방향을 잘 알아야 한다


나는 2~3년마다 코끼리를 갈아탔다. 때가 됐음을 느낀 내가 먼저 뜨기도 했고, 나를 원하는 다른 코끼리가 갑자기 나타나 아름답게 갈아타기도 했다. 비정규직 털들이 아마 그 정도 기간을 거쳐 코끼리와 헤어질 텐데, 나는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털처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지난 17년 동안 정규직 털로 위장하고 살았던 벼룩이었다. 


모쪼록 많은 털들이 눈치 챘으면 좋겠다. 우리들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코끼리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허우적대는 티끌만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굵기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티끌만한 터럭인 건 마찬가지인데,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인가. 게다가 같은 터럭 신세이면서 굵은 터럭이 좀 얇은 터럭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이 코미디 같은 현실은 대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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