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ica Jul 10. 2019

일에서 추방된 놀이, 노동의 그림자가 되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줄여서 ‘알쓸신잡’이라고 하는 TV 예능프로그램이 시즌3까지 제작되며 인기몰이를 했을 때 모두가 놀랐다. 저런 고리타분한 얘기들을 자청해서 귀 기울여 열심히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젊고 잘생긴 인기스타도 하나 없는데 우리는 중년 몇 명이 쉴 새 없이 떠드는 수다를 재미있게 잘만 들었다. 


오늘날 공부는 노동의 일종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역사, 과학 등 다양한 지식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배우고 그 내용을 그저 시험 답안지에 채우느라 덮어놓고 외워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부가 노동에서 벗어나자 지식이 재미있는 놀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됐다. 요는, 강요된 것이냐 아니냐였던 것이다. 


퇴근 후, 혹은 휴일에 하루 종일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은 분명히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쉰다기보다는 방전된 체력을 충전하는 과정에 가깝다. 오늘의 휴식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없고 다음날 출근을 위해 몸을 만드는 의미가 더 크다 보니, 오늘을 진짜 오늘로 누리지 못하고 내일의 볼모로 잡혀 있게 된다.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내 시간은 평일 업무하는 동안에만 유효한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쉬는 날마저도 내 목에 목줄이 여전히 매여 있더라는 얘기다. 


자본주의는 일에서 즐거움을 삭제하고 노동만 남기는 과정에서 놀이를 우리 곁에서 추방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본주의는 놀이를 변장시켜 상품으로 내놓았다. 작게는 삼삼오오 노래방이나 게임방에 가거나 영화관에 가는 일에서부터, 크게는 거액을 들여 떠나는 해외여행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놀이 행위는 이렇게 ‘발명’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놀이도 돈을 내야만 즐길 수 있는 ‘상품’이 되고 말았다. 


유료 상품으로 전락한 현대의 놀이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동네를 뛰어다니며 했던 술래잡기나 고무줄놀이 같은 자발적인 놀이들과 어떻게 다른 걸까.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를 쓴 한경애 작가는 “노동의 시간과 분리된 채 우리 앞에 진열된 ‘놀이’들은 다채로운 색깔이지만 텅 비어 있다”며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현재의 ‘놀이’를 “지루한 세계가 만들어낸 콜라 같은 청량제”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것은 결코 놀이가 아니다. 이것은 단지 노동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 놀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순수한 즐거움으로 하는 활동, 무엇이건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놀이는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다.

게임방에서 몇날 며칠 쉬지 않고 게임만 한 게임 중독자는 즐겁게 놀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경애 작가는 이렇게 중독된 상태와 놀이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중독 상태에 대해 “외부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조금씩 마비 상태가 되어 더 큰 자극을 욕망하는 것”이라며 “무언가를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천진함은 언제라도 그것을 그만둘 수 있을 때, 바로 내가 놀이의 주인일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옳거니, 바로 이거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으면 건강한 상태’라는 것 말이다. 게임이든 알코올이든, 니코틴이든, 그리고 매달 카드 값 갚고 주택 담보 대출 갚느라 어느새 우리가 중독돼 버린 월급이든, 언제든 쉽게 그만둘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중독이 아니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든지 회사를 탈출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만 한다면 그 전까지는 하루하루 힘겨웠던 회사 일도 놀이로 바뀌어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실제로 이런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2014년 11월말부터 2015년 1월초까지 ‘직장인 가치투자 고수’라는 주제로 6명의 직장인 투자자를 차례차례 인터뷰해서 기사를 연재했었는데, 그분들은 괜찮은 투자성과에 힘입어 경제적인 기반이 착착 마련되어 갈수록 회사 일을 전보다 즐겁게 해나가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편안한 투자’님은 “투자성과가 잘 나오니까 상사의 눈치를 덜 보게 됐다"고 했으며, ‘황금거위아빠’님 역시 "투자 성과가 좋게 나오다 보니 승진과 연봉 등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어 오히려 업무 성과가 잘 나온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 기사의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내가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다음 뉴스펀딩에 연재했던 ‘평범한 직딩고수 투자노트 엿보기’ 시리즈를 읽어보시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