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날들에서

● 네 번째 하루

by 박유미

요즘은 한 글자, 한 단어를 백지 위에 뻐끔거리기가 어려웠다.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이라고 쓰려다가 공포에 질린 사람처럼,이라고 쓴다. 무엇이 그렇게 겁이 나는지 곧바로 말할 수 있을 만큼 대범하지 못하다. 겁쟁이라는 게 그런 법이다. 그러나 내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아직 잃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요즘 제일 어려운 것: 다시 글쓰기. 글 쓰는 나를 어렵게 여기고 멀리하지 않기.

글을 쓰는 이유: 행복해서. 열심히 쏘다니고 푹 빠져 적어내려갔던 시간들은 천국이었네.

부끄러워서 입 밖으로 못 꺼냈던 것: 거창해지고 싶은 마음.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조바심.

좋게 말해서: 전체적인 계획 속에서 결과물을 만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게, 그게 욕심이지.

근데 사실은: 아무것도 안 될 거 같으니까 한 발자국도 못 떼어 점점 외로워지네.

처음 만나는 인상적인 글들: 출판사에서 줄줄이 오는 완곡한 거절 답신.

잊고 있다가 다시 생각하게 된 것: '나쁘지 않은' 글이 모두 책으로 만들어져야 하는가. '책으로 만들만한'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원하는 작업인가.

포기한 것: 멋있어 보이기. 겉멋 들어간 글쓰기. 안하고 싶지만 좋아보이는 일들.

항상 알고 있지만 또 알게 되어 좋은 것: 내 글을, 글을 쓰는 나를, 글을 쓰지 않는 나를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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