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어젯밤 자리에 눕기 전에 유튜브 앱을 열어 선우정아의 <백년해로>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낮에 남편이 '당신이 생각나는 노래'라며 추천해주었는데 일과를 다 마친 후에야 꺼내어 볼 수 있었다. 휴대폰 스피커 너머로 울렁이며 치달아오는 선우정아의 목소리 때문에 눈물이 가슴 속에 꽉 찼다.
지겹게 있어줘. 절대 먼저 떠나지 말아줘. 우리 같이 영원을 꿈꾸자. 만약 네가 내 곁에 없다면 널 기다려도 소용없게 되어 버린다면, 아 내 세상은 뒤바뀔 거야, 아 내 모든 건 무너질 거야. 만약 네가 없어진다면 억지로 널 찾아가도 만날 수 없다면, 아 그리움이 날 삼켜버릴 거야, 아 모진 말조차 부러울 거야.
- <백년해로> 가사 옮김
그녀가 쓰는 가사와 멜로디가 언제나 내 안에 밀려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새벽 나를 뒤흔든 꿈을 몰래 훔쳐 보기라도 한 듯 뒤이어 찾아온 이 노래에는 금방 무장해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랑 오래 있겠다고 약속했잖아. 이렇게 떠나는 게 어디있어. 꿈 속의 나는 그를 원망하며 황망해하고, 일상을 살아가다가 불현듯 생각나 주저앉아 울고, 그렇게 살아가다가 또... <백년해로>를 듣기도 전에 나의 꿈 속에서는 이미 그 노래가 울렁이고 있었다.
오늘 아침 첫 손님은 배우자의 사망신고를 하러 온 70대 노인이었다. 회수한 주민등록증 속 얼굴이 낯이 익었다. 서류와 함께 다정한 농담이 오고 갔던 어르신들의 쓸쓸한 부고를 듣는 일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사망자의 이름을 쓰던 펜이 툭 멈추고 눈물이 터져나오는 눈가를 주름진 손이 훔쳐낸다. 사망진단서의 한 구석에 시선이 멈췄다. '사망의 원인: 목 맴(추정)'. 노인의 펜은 한참을 멈춰 있었다.
'아주 오래, 사랑했을 것이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정이, 어떤 삶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도 마음대로 그런 추정을 했다. 그건 아마도 낯선 이에게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픈 욕구였겠지. 다정했을 어느 노인들을 상상하면서 사실은 함께 <백년해로>를 흥얼거리며 노부부로 늙어갈 그와 나의 모습을 그렸으리라.
결혼하기 전 그에게 썼던 편지를 오랜만에 들추어 보았다. 석 달이나 전화 한 통 못하고 떨어져 지내야했던 그리운 연인에게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보내는 편지.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구조신호 같은 사랑의 마음은 모국어의 옷을 입고 퍼져나간다. 편지로, 그리고 노래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내 존재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때로는 남동생 같고, 때로는 오빠 같고, 때로는 아빠 같은 나의 애인.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사람. 내가 남은 삶의 동반자로 선택한 사람. 나에게 평생 옆자리를 내어주겠다고 약속한 사람. 함께 있으면 가장 편안한 사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가장 궁금한 사람. 하루를 함께 하고 서로의 날들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 '그'가 나의 가족이었으면 좋겠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각하게 한 사람. 불안해하는 나를 위로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 내가 선물하는 기쁨에 푹 빠지도록 한 사람. 폭 안으면 더 없이 좋은 사람. 내가 지금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지 않도록 믿음직한 사람.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게될지 가장 기대되는 사람. 그리고 그날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주고 싶은 사람. 내가 사랑하는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