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에 비춘 하루

12월 1일

by 박유미

시간을 들여 푹 익혀낸 글에서 우러나오는 풍미가 부럽고 존경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아 작문의 주방에 들어서지도 못 하다가 겨우 한 발자국 뗀 게 얼마 전 일이다. 업무 중간에 짬을 내고 퇴근길 버스에 앉아 겨우 퍼 담은 간장 종지만 한 글에 나의 오늘을 비춘다. 지금 이 순간 제철인 재료를 다듬고 양념을 무쳐 바로 담아내는 글에는 겉절이 같은 생생함이 있으리라 믿는다.


같은 주제를 다룬다 하여도 어제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오늘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내일의 내가 해야만 하는 이야기는 서로 다를 것이다. '내'가 아니라 복수의 '나들'이 시간을 사이에 두고 도미노 조각처럼 듬성듬성 떨어져 서로를 차례로 넘기는 것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그 한 조각, 한 조각을 소중히 여기며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말을 오늘의 목소리로 남기고 싶어서 언제나 미완성인 나의 글에 마침표를 찍고 또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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