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는 사랑, 기다리는 사랑

12월 9일

by 박유미

부대로 복귀하는 남편을 배웅하느라 버스터미널까지 같이 나왔다. 무리해서라도 차를 구입한다면 남편이 오가는 길이 좀 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알뜰한 그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버스를 세 번 이상 갈아타며 서산과 대전을 부지런히 왕복한 지 1년 반이 되어간다. 내가 가끔 서산으로 찾아가기는 해도 대전에서 편히 기다리는 역할이 더 익숙한 것을 보면 역시 고생은 남편이 다 했다. 사랑을 찾아 버스를 타고 멀리서부터 달려와주는 왕자님이 있어 나는 잠자는 공주처럼 가만히 기다린 게 다니까.


둘이 찰싹 달라 붙어 부비적대고, 여기저기 쏘다니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두리번거리고, 따뜻한 이불 더미 밑에서 뒹굴거리기. 풍성하고 알찬 우리의 주말 일정이다. 비싼 뮤지컬 티켓이나 호텔 레스토랑 저녁식사, 야경 드라이브를 끼워넣지 않아도 충분히 호화롭다. 어제 다녀 온 특별한 무료 공연도 우리가 만끽한 풍요 중 하나였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과 늦잠 자기 딱 좋은 토요일 아침이 짝을 이루면 외출을 미루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 마음을 잘 이겨내고 현관문을 나선 것은 희곡 낭독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공연에 대한 궁금증 덕분이었다. 지역의 문화예술 행사에 관심이 많아 SNS로 틈틈이 소식을 모으다가 우연히 희곡 경연 시상식과 대상작 낭독회 에 대해 알게 되었다. 소극장에서 연극은 종종 보았지만 소품과 동작 없이 목소리로만 이루어지는 낭독 공연은 처음이었다.


소박한 관객석은 열댓 명 남짓한 관객들이 옹기종기 채우고 있었다. 관객 중 시상식에 축하하러 왔다가 공연을 감상하려고 남은 수상자의 가족들을 빼면 무대 위의 배우들과 스태프를 모두 합친 수가 더 많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대상 수상작이라는 명예가 헛되지 않게 좋은 작품이었고 좋은 연기였다. 배우들은 몸을 쓰는 대신 지문을 차분하게 읽어서 전달하고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도 무대를 거칠게 활보하듯 대사를 주고받았다.


꼼짝도 않은 채 공연에 빠져있다가 극이 끝나갈 무렵에야 주위를 둘러보니 건너편에 방금 대상을 받은 희곡 작가이자 바로 이 연극의 원작자가 앉아있었다. 시선을 약간 아래로 떨구고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혀가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지켜본다면 누구라도 일반관객이 아닌 건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작품이 배우의 목소리를 입고 다시 태어나는 자리에서 그의 얼굴은 초조하게 떨리기도 하고 때로는 눈이 반짝 빛나기도 하며 배우의 재치 있는 연기에 한순간 긴장이 풀려 아이처럼 웃기도 했다.


막이 내린 후 작가와 배우들에게 멋진 공연이었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넉살이 좋지 못해서 실패했다. 대신 극장을 나서는 작가의 어머니 뒤에 바짝 따라붙어 남편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정말 좋은 작품이었어요, 오늘 참 잘 온 것 같아요!" 평소보다 우렁찬 목소리 때문에 남편은 금방 내 의도를 꿰뚫었다.


남은 주말 동안은 오락실에 들러 남편의 녹슬지 않은 솜씨를 구경하고, 더욱 매서워진 칼바람을 피해 장갑을 나누어 끼고, 탕수육 2인분을 시켜 같이 먹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구글플레이에서 1500원 주고 대여한 영화 <레퀴엠>을 태블릿PC로 보며 감탄했다. 어리광 부리고 싶어하는 남편에게 나는 허벅지를 베개 대신 빌려주었고, 남편은 그동안 길어나온 내 뒷머리를 이발기로 세심하게 다듬어주었다. 이 순간은 짧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서산행 버스 승강장 앞에 그를 데려다놓고 터미널 출구쪽으로 걷다가 장난스럽게 뒤돌아보았다. 그가 싱긋 웃고 있었다. 갈듯 말듯 여러 번 뒤돌아보는 것은 우리의 오래된 배웅 습관이다. 얼굴이 아주 작아져서 표정이 잘 안 보일 때까지 장난을 치며 뒤를 돌아보니 남편이 손을 높이 들어 인사해 주었다. 내가 터미널을 빠져나올 때까지 남편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연극의 첫 공연을 지켜보던 희곡 작가처럼, 그는 우리의 사랑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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