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왜 보건대학원?
21년 2월 학사를 졸업하고 1년 반만의 일이다.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은 크게 없었다. 인생에서 공부는
대학교면 족했다. 한 학기에 500만 원이 넘는 학비와 일을 병행하는 삶. 쉬운 일은 아니어서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어서 대학원 원서를 접수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께 대학원 진학에 대해 말씀드렸다. 7개월 차 신입 보건관리자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게 빠른 선택은 아니었냐고 하셨다. 그때 나도 왜 그렇게 빨리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의료적인 지식은 알고 있지만 나에게는 산업적인 지식이 너무 부족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 대학원이 아니라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되잖아.”
물론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자격증을 위한 공부는 잠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에 하나는 연구로 궁금한 점을 해소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일찍이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도 강한 청춘(?)이라 도전했던 것 같다. 간호대학원에 가야지 했다가, 보건대학원에 도전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간호사를 하다 보면 고민의 순간에 빠진다. ‘난 간호사니까 간호대학원? 포괄적인 산업 지식도 필요하니까 보건대학원?’
관점의 차이인 것 같다. 나는 간호학을 전공했던 터라 간호학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세상이 다인 줄 알았다. 간호학을 알려면 기본적으로 보건학을 알아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기는 것 같다. 예방, 위생, 안전, 산업 등의 포괄적인 학문을 알아야 간호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보건대학원에 재학하기로 결정했고 추후에 간호학을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는 안전보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에 한계가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직업적인 고민, 보건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는 법, 커리어 걱정 등 이 모든 것을 대학원에 계시는 교수님, 선생님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2학기 재학 당시, 5학기 졸업반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곳이 직장, 지인 말고 어디가 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외에 직업적 커리어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직장, 지인 말고도 학교가 있어요. 학교만이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때, 대학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였는지, 임상에 대한 묵혀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가 이 길에 명분이 생기고 ‘해봐야지’ 라는 마음이 생겨 다시 도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회도 참석해 보고, 안전보건관리자들과 소통도 하고, 다양한 곳에서 보건관리자를 하고 계시는 선생님들과 학업활동도 하다 보니 어느덧 논문을 쓰고 있는 내가 보인다.
세상은 이렇게나 넓고 우리의 영향력은 무한한 것 같다. 그럼에도 대학원에 오지 않았으면 모르고 살았을 것 같은 일이 너무나도 많다. 아직 우리나라는 안전보건의 중요성이 크지는 않지만 우리가 키워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일할 수 있었고 대학원에서 배운 지식과 선생님들이 하고 계시는 업무를 참고하며 회사 안전팀에 기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원과 직장을 병행하며 안전보건 지식을 키우기 시작했다. 쉽지 않을 일이었지만 어느덧 4학기가 되었고 논문과 연구를 시작하면서 느꼈다. ‘내가 큰 무기를 갖고 있구나’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뇌심혈관 관련 질환이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연구 논문을 공부하고 있던 찰나에 회사에서 관련 요약 논문본을 요청하였고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니 뿌듯했다.
내가 일찍이 대학원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을까? 그에 따라 협회에서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상도 주신 것 같다. 그때마다 자만해지지 말고 항상 내가 이 일을 더 노력할 수 있는 데에 명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모든 근로자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 아닐까? 그 인식이 시작되는 순간이 오면 정말 좋겠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는 이유 아닐까. 그러니 추천하고 싶다. 세상과 실무 사이에서 깊은 연구를 통해 묵혀둔 고민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싶은 선생님들에게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