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한 산업간호사는 이게 아니야.
2일간의 교육을 마치고 사무실에 복귀했다. 사실 이틀은 나에게 턱 없이 부족했다. 회사 내 보건관리자 톡방이 있어 업무와 모르는 것들을 서로 공유했다. 그것이 간호사를 비롯한 산업위생관리기사 등의 보건관리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 창구 였다. 회사에 국한되지 않고 정보를 얻기 위해 기업의 보건관리자들이 모여 있는 오픈채팅방과 인터넷 카페를 통해 업무공유 및 하소연도 했다.
한 달 동안 회사 생활을 하고 보건관리자들과 소통하면서 느낀건 우리에게 정확히 해야 할 업무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마다 보건관리의 체계, 방식, 방향, 방법들이 다르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마저 달랐다. 특히나 간호사 출신 보건관리자들은 임상의 경험을 살려 업무를 하려 해도 산업적인 지식이 없으니 여간 문제였다.
그래서 산업간호사들 대부분은 다시 임상으로 돌아갔다. 임상이 싫어 퇴사했는데, 산업장은 직업적 정체성에 혼란만 생길 뿐이었다. 간호학과 때 배운거라곤 병원에서의 환자를 간호하고 케어하는 것이었는데, 산업장에는 환자가 없지 않나. 지금 당장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지 않나. 그렇게 간호사들은 전공을 살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다시 임상으로 돌아갔다. 나도 마찬가지로 4년동안 등록한 학비가 너무 아까웠다. ‘나 이러려고 몇 천만원 들어가며 간호학 배운거 아닌데.’
전공과목은 치료적인 의료지식과 간호를 요구했다. 그럼 산업간호는 무엇일까? 다르게 접근 해 보기로 했다. 전공과목 중 유일하게 다른 하나. ‘지역사회간호학‘. 치료를 넘어 예방에 초점을 둔 학문이다. 1차의료기관인 보건소, 학교, 지역사회, 그리고 산업장을 대상으로 예방에 대한 학문을 다뤘었다. 그 때 그 시절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수질, 화학물질, 건강검진 등과 같은 이상한 것들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몰랐는데 환경은 곧 인간의 건강과 연관이 되었고 화학물질로 인해 직업병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검진과 교육 등을 통해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업무하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화학물질을 관리하며 근로자 건강검진을 통해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 산업간호사의 업무임을 대충이나마 알게 되었다. 결국에는 치료가 아니라 예방 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아직까지도 예방의학에 앞서 치료를 우선시한다. 그러기 때문에 질병에 발생하기 이전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수 가 없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과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지속되면서 사회는 예방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질병이 발생하여 치료하는 것보다 질병 발생 이전에 예방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산업간호사는 직장에서 마이너 파트를 차지할 수 밖에 없다. 분명히 병원은 의사와 간호사가 없으면 안되는 곳이었는데, 산업장은 굳이 우리가 필요 없었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데 우리는 근로자에게 휴식시간을 수시로 부여하고 업무 시간에 보건교육을 하며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해 작업 시간에 건강관리를 한다. 또한 필요 시에는 질병이 있는 근로자의 직종을 변경시키니 회사에서 우리를 좋아할 리 있나.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는 항상 근로자의 건강보다 업무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관리자들과 싸운다.법적으로 특수검진을 수검해야 하는 근로자들이 업무가 우선이라는 이유로 검진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검진을 받지 못해 결국에는 사후관리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빨리 빨리’를 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네 간호사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업무를 할 때에 나의 목소리는 뒷전 이었다. ‘법적으로 어쩔 수 없이 배치해야 하는 인력’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었다. 신입 때는 실질적인 보건 업무를 할 수 없었다. 가끔 넘어오는 서류 업무와 컨테이너 정리, 인력 관리, 심지어는 청소까지 해봤다.
탈임상을 하고 산업장에 발 들인 간호사들. 우리가 생각한 산업간호사는 이게 아니었다. 근로자들이
건강하게 일 할 수 있도록 의료 지식을 전달하고 보건교육과 위생 관리를 통해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 당연스러운 일들이 당연스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 길이 나의 길이 맞을까? 고민은 고민을 더해갈 무렵, 힘과 지식이 있어야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022년 9월. 끝난 줄 알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한 기회의 시간. 간호대학원이 아닌 보건대학원 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