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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얀돌이 Mar 26. 2024

임상을 떠나며

간호사의 탈임상, 뭐 먹고 살지.

21년도 11월. 나는 병원과 작별했다. 4년 동안 간호학 학위를 졸업하고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기까지의 시간이 필름처럼 흘러갔다.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간호사가 병원 밖을 나오면 그건 끝 아닌가?


탈임상. ‘임상을 탈출하다 ‘라는 간호사들 간의 사직의 언어. 그렇다. 나는 탈임상을 했고 그 누구보다 빨리 임상을 탈출했다. 사실 탈출이 아니라 탈피이자 회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임상에서 일한 적 있어요” 나에게는 부끄러운 말이 되었다. 고작 3개월. 임상 경력을 얘기하자면 그저 무경력에 가깝다. 그래서 난 임상에서 재직했다는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버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동기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 좋은 병원을 그만두다니’부터,

‘안정적인 일자리를 그만두고 떠나는 이유가 뭐야?’,

‘조금만 더 버텨보지, 세상살이 다 힘들어.’,

‘적성에 맞는 일이 어디 있어, 3개월 했다고 뭘 알아’


라는 말이 나에게 화살처럼 날아왔다. 그만둔 나보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더 슬퍼하셨다. 주위에서는 그만둘 줄 몰랐다고도 했다. 학부 실습부터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확고했다. ‘아,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이 이야기에 앞서 나는 탈임상을 추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임상에 계시는 선생님들을 존경한다. 무턱대고 타 간호직종으로 눈을 돌리라는 것보다 임상이 먼저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기도 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빨리 임상을 그만둔 이유를 물어보신다면 짧고 명료하다.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기분을 느꼈다. 외향적이고 활발한 나는 내과병동으로 자리 났지만 병동의 분위기와 체계, 문화, 수동성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중을 들어도, 막내이자 처음이기 때문에 열심히 배우려 노력하고 공부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간신히 독립을 했고, 수습기간이 끝나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시겠다는 수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듣게 되었다.


‘선생님, 저 그만두고 싶습니다.’


꿋꿋하게 열심히, 군말 없이 일해온 나에게 당연히 선생님들은 당황하셨고 그때의 수간호사 선생님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셔서,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요.”


라는 대답을 했다. 이런 사람 많이 보셨겠지, 이렇게 그만두겠다고 하는 신규 간호사를 정말 많이 겪으셨겠지. 이번이 제일 신선한 충격이라고 하셨다. 저렇게 이야기한 사람이 당연히 없었겠지만.


“그래, 얼마나 힘들었겠니. 너를 이해하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네가 다른 일을 어떻게 하겠니?”


나는 ‘네가 이것도 못하면 저걸 어떻게 하겠어?’라는 말에 이제 휘둘리지 않는다. 이건 못했지만 지금의 업무는 잘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것을 더 잘할 확신이 있었다. 확신이 없다면 당장 그만두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무턱대고 힘들다고 그만둔 것도, 홧김에 그만둔 것도 아니다. 나에게는 확고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이거 말고 잘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


그렇게 첫 직장에서 퇴사를 하고 한 달 기간 동안 열심히 헤매고 열정적으로 길을 잃었다. 간호사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 직업은 사랑하는데 내가 몸 담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임상을 그만두니 코로나 아르바이트에 학교 보건실 파트타임 업무도 하면서 점점 넓은 세상과 이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때 한참 중대재해가 언론에서 떠들썩했다. 재해로 인해 다치는 사람들, 직업으로 인해 질병에 걸리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받지 않는 회사들.


‘저 사업장에는 의료인이 없나? 왜 저런 일이 계속 일어나지?‘라는 고민이 시작된 시점. 몰랐다. 의료인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근로자들을 위한 건강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는 것도 몰랐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없는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사업장을 조사해 보고 지역사회간호학 책을 뒤져가며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고 무얼 더 알게 되나. 이왕 찾아보는 거 경험해 보기로 했다. 때마침 S건설사의 보건관리자 채용공고가 올라왔고 해당조건으로는 ‘간호사’라고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뇌를 총동원하여 다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원서를 제출했다.


잊고 있을 때 즈음 12월.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얼떨결에 대기업에 채용이 되었다. 그게, 나의 시작이었나 보다.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그만두는 건 회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또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용기에 가깝다. 그러니 확신과 확고함이 있다면, 나 자신을 믿고 과감히 도전하자. 그게 나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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