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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얀돌이 Apr 23. 2024

산업재해와 직업병 (열사병)

일하면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근로자들은 업무를 수행하기 이전에 배치전건강진단을 받는다. 이는 특수검진의 일종으로, 배치예정 업무에 대한 적합성 평가를 위해 실시하는 진단 중 하나이다.


건설현장뿐만 아니라 특수검진 대상이 되는 근로자라면 무조건 수검해야 하는 검진이다. 그동안 국가에서 챙겨주는 일반검진조차 받아보신 적이 없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 반장님들이 계셔서 지정병원에 검진을 보내드리는 것도 초반에는 힘들었다.


부지정지라는 토공사 시즌(공사의 첫 단계)인 본공사부터 내가 투입이 되었는데, 다행히도 공사의 기초 단계라 근로자들 수가 적어 미검진자도 될 수 있는 데로 특수검진을 빨리 보내드렸다.


특수검진 결과가 나오면 근로자들 마다 정상인 A, 직업성요관 찰 자 C1, 직업병유소견자 D1 등의 등급이 부여된다. 생각보다 C1 등급을 받은 근로자들이 A등급 근로자들보다 많았다. 업무를 하면서 연관성이 있는 질환과 그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정말 큰 일이었다. 재해는 중요하지만 직업성 질병은 중요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어쩌면 질병도 재해의 한 부분인데. 소음과 분진 위주의 환경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은 호흡기 질환 위험성, 주로 소음성 난청 위험성을 가진 근로자들이 많았고, 중량물을 취급하기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해야 할 근로자들도 많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직업병 개선을 위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몰랐다.


우선순위를 정하기 시작했다. C1 등급을 받은 근로자들을 위해 사후관리 및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 1회의 건강 관리를 시작으로 청력, 호흡기, 근골격계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근로자 집체 보건 교육까지. 추가적으로 보호구 착용법, 공학적 방법으로 환경 개선하기 등의 질병 예방법을 안전보건팀 내에서 같이 강구하며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처음에는 다들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는 교육 내내 주무시는 반장님도 계셨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인식을 제고시키는 일이 이렇게나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래, 누가 이기는지 한 번 해보자!’


현장에 나갔다. 서류 업무도 많지만, 현장에 나가서 부딪쳐야만 근로자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마치 병동순회 하는 것처럼, 현장도 오전에는 일일점검을 했다. 병동에서 인수인계 전후로 병동을 순회하며 환자의 라인이 잘 잡혀있는지, 수액은 어느 정도 남았는지, 어느 베드에 어떤 환자가 있는지, 과거력과 질병의 진행정도는 어떤지 등을 보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현장도 이와 동일하게, *TBM이 끝나면 근로자들이 취급하는 MSDS와 이에 따른 올바른 보호구 착용 여부,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 대비한 올바른 자세 및 직종 별 유해인자들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 협력사 관리자, 근로자들과 바로 조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1년이 넘어 2년 차가 되었고 3년 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반장님들도 이제 나만 보면 안 쓰던 보호구를 쓰신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위험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신다는 거니까. 그리고 그로 인한 질병이 본인에게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아가시는 것 같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발효된 이후로 산업재해와 관련된 이슈가 커졌고 그에 대한 재해의 위험성, 재해 조사, 산업 재해 관련 보험 등이 중요해지면서 근로자들도 업무로 인해 다칠 때마다 산재보험 요양급여 등을 신청한다. 근로자들도 다치면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를 은폐하려 노력하는 기업도 많고 100% 재해로 인정해주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덮으면 덮을수록 일은 더 커질 테다. 세상에 부각되지 않은 일들이 그간 너무 많았다. 산업재해를 예방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재해가 발생한다면 언젠가는 중대재해가 일어나고 말 것이다. 그동안 그래왔지 않나.


여름철, 건설회사는 옥외 작업이 많아 폭염 위험단계별 대응 요령과 온열질환위험성이 있는 고령자, 만성질환자를 관리하고 있는데 실제로 22년부터 ‘열사병’이 직업병으로 등재되었다. 실제로 피부암에 걸린 사례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피부 질환은 직업성 질병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들렸다. 열사병이 직업성질병이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일 수밖에 없다. 약 8시간을 옥외에서 작업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한다.


여름철 현장을 순회하다가 탈진할 뻔했다. 작업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당 현장에 ‘물, 그늘, 휴식’이라는 큰 현수막을 현장에 걸어 놓은 것이 예방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휴식시간을 기존시간 보다 수시 부여하고 찾아가는 건강서비스를 통해 수시 건강관리를 하여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노력했다. 휴게실에 냉방시설 설치 및 관리, 이벤트로 주 1회 아이스크림과 시원한 음료를 제공하며 열사병 예방에 힘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반응이나 증상이 있는 근로자들은 건강관리실에 방문하게 하여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다.


여름철 열사병 예방은 그저 한 사례일 뿐.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직업병이 있고 이를 위한 예방법도 다양하다. 그러므로 각 사업장 보건관리자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대상자의 눈높이에서 항상 바라봐야 한다. 내가 겪지 않았지만 내가 겪은 것처럼. 내가 느끼지 않았지만 내가 느낀 것처럼. 대상자들과 같이 걱정하고 아파하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일을 하는 이상 항상 직업병에 노출되어 있다. 내가 될 수도 있고, 나의 가족일 수도, 나의 지인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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