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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Nov 14. 2020

학습예찬

"학습, 꽃봉오리를 피게 하는 힘"

엘리자베스 아펠(Elizabeth Appell)의 시 '위험(risk)'을 음미하자. 아펠은 미국의 무명 시인이다. 류시화 시인이 시집 '시로 납치하다'에 소개하였다. 류시화는 영성이 강한 시인이다. 탁월한 리크루터다. 지구촌의 무명 시인을 캐내 세상에 소개한다. 그가 캐낸 시인과 시는 보석처럼 반짝인다. 인간 내면 깊은 곳에 돌멩이를 던져 파도를 일으킨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이. <류시화 옮김>


And the day came

when the risk to remain tight,

in a bud,

became more painful

than the risk it took to blossom.


깊은 울림과 교육적 메시지를 전해 준다. 꽃을 피우는 것은 세상 밖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커밍 아웃. 존재를 알리는 것은 늘 두렵고 위험한 일이다. 그냥 피워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만들어낸 성취다. 줄탁동시(啐啄同時). 암탉의 따뜻한 체온을 누리기만 하는 알은 병아리가 되지 못한다.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필사의 몸부림을 쳐야 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생명은 몸부림이고 타이밍의 예술이다.


봉오리(bud)는 꽃이든 사람이든 내면의 잠재력이고 가능성이다. 생명의 근원이다. 누구든 봉오리를 꽃으로 피게 하는 파워가 있다.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이 진즉 나왔어야 했다. 사람은 자기만의 봉오리가 있다. 그 봉오리는 각양각색이다. 말을 잘하는 봉오리, 수리능력이 뛰어난 봉오리, 음률에 조예가 깊은 봉오리, 신체 활동에 탁월한 봉오리... IQ가 사람 잡는 때가 있었다. 지금도 잡고 있다. 초중고 시절 한 번은 테스트를 받았을 것이다. 아이큐가 한 사람의 일생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닌다. 콤플렉스와 확증편향. 아이큐가 한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고 결정하는 도구가 되었다. 위험한 결정론자다.


학교와 강의실은 학습정원(learning garden)이다. 정원에 많은 종류의 꽃과 풀들이 있는 것처럼, 학습정원에는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진 학습자들이 있다. 학습정원에 심어진 생명에는 봉오리가 넘쳐난다. 봉오리를 억지로 열게 할 수는 없다. 물가로 데려가도 억지로 물을 먹을 수 없는 이치다. 스스로 피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 피지 않고 움츠리며 숨는 것은 고통이다. 선생은 움츠리고 숨어버리는 아이들의 고통과 공감해야 한다. 선생의 공감이 그 아이의 봉오리를 피게 한다. 선생은 학습정원의 정원사다.


어린 아이를 잃을 때 슬픔은 더 크다. 봉오리를 피워보지도 못한 게 슬픈 것이다. 그 봉오리가 어떤 향기를 어떤 감동을 줄지 모른다. 선생의 눈엔 아이 하나하나가 봉오리다. 정원사는 활짝 핀 꽃과 함께 할 때 기쁨과 보람을 만끽한다. 학습정원의 정원사도 마찬가지다. 학습의 힘으로 저마다의 꽃을 활짝 펴야 한다. 학습, 꽃봉오리를 피게 하는 강력한 힘이다. 배움의 날갯짓, 삭비(數飛)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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