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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Nov 13. 2020

단풍(丹楓)

떨켜층은 경륜이다.

우리나라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다. 만산홍엽(滿山紅葉). 내장산 서래봉에 올라가 보라. 단풍에 호응하며 하늘도 빨강, 노랑, 주홍색으로 물든다. 황홀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김영랑 시인도 "오매 단풍 들겠네"로 에둘러 표현하고 만다. 남도 특유의 사투리 감탄어다. 알베르 카뮈는 "가을에는 모든 나뭇잎이 꽃이 되는 제2의 봄이다"라고 한다. 


단풍의 시작을 알리는 기준은 무엇일까? 전체 나뭇잎의 20% 정도가 울긋불긋 물들 때를 단풍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단풍의 절정기는 나무나 숲 속의 80% 정도가 물들 때이다. 꽃은 따뜻한 남쪽에서 올라오고 단풍은 추운 북쪽에서 시작돼 하루 20㎞씩 남하한다. 설악산과 같은 높은 산에서는 보통 하루 50m씩 아래로 내려온다고 한다. 모든 것은 기상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단풍은 '아름답다'는 느낌 이전에 '애잔하고 슬프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丹楓은 '붉다'는 의미의 한자어를 쓰지만, 언어만으로는 단풍이 내포하는 신비와 다양성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기온이 0℃ 부근으로 떨어지는 가을, 나무 이파리는 엽록소의 생산을 중지하면서 형형색색으로 변한다. 단풍은 가지와 이파리 사이를 가로막는 '떨껴층'이 체관으로부터 수분 공급을 막아 이파리를 아사(餓死)시킨 결과물이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스스로 내친다. 이산의 아픔이 곧 단풍이다. 단풍의 색깔은 다름 아닌 부모 나무의 피눈물이다. 


수분을 흡수하지 못한 이파리가 가지에 붙어 색깔을 뽐낸다. 사실 단풍은 가늘게 숨 쉬며 떨고 있다. 사람의 눈에는 아름다운 자태지만 이파리는 매일 매 시간 버티고 있다. 이파리 단풍은 떨어져 부모 나무 몸체를 둘러싸며 수온(樹溫)을 올려주고 썩어 영양분을 제공한다. 겨울을 나고 생존을 지속하기 위한 생명의 질서다. 몸체는 나무의 근본이다. 근본을 살리고자 단풍 이파리는 기꺼이 낙하한다.  


이파리가 떨어지면 가지에는 상처가 난다. 가지는 이파리와 이별할 때 생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이 상처를 낫게 하는 마데카솔이고 후시딘이다. 상처 부위에는 생살이 돋고 '떨켜층'을 형성한다. 두툼해진 떨켜층은 방한복이다. 추운 겨울에 얼지 않고 무사히 견뎌낼 수 있는 나무들의 지혜다. 신비롭고 경이로운 회복 탄력성이다.


사람에게도 떨켜층이 있다. 눈에 보이는 떨켜층은 주름살이고 굳은살이다. 보이지 않은 떨켜층은 연륜이요 경륜이다. 철이 없었을 때 부모님의 손에 박힌 굳은살을 친구들에게 감추고 싶었다. 부모님의 이마와 손에 깊게 박힌 주름살과 굳은살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고 희생이다. 삶의 나이테고 연륜이다.  


만추(晩秋)의 단풍은 더 붉고 더 노랗고 더 주홍색이다. 낙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일은 그들의 숨소리가 더 가늘어 지고 거세진 바람 앞에서 마지막 잎새가 될 것이다. 놓아줄 때가 되었다. 메리 올리버(Mary Oliver 1935-2019)의 시로 위안을 삼는다. 붉은 단풍의 우리말과 노랑 단풍의 영어시다.

 

이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사랑하기

자신의 삶이 그것들에 의지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것들을 가슴 깊이 끌어안기

그리고 놓아줄 때가 되면

그것들을 놓아주기 


To live in this world

you must be able to do three things:

to love what is mortal;

to hold it against your bones knowing your own life depends on it;

and, when the time comes to let it go,

to let it go. <블랙워터 숲에서_류시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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