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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3. 2020

한국의 궁궐 ②

건축 구조 및 원리

유학의 이념을 통치 철학으로 한 조선 왕조 시대에는 궁궐을 건축하는 데도 정해진 구조와 원리를 따랐다. 황궁(皇宮)과 왕궁(王宮)의 건축 원리도 다르다. 공통점이자 대원칙은 주례(周禮)의 원리인 좌묘우사 전조후침(左廟右社 前朝後寢). 북악산 아래 정궁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에 종묘, 우에 사직단을 배치했다. 정사(政事) 목적의 건물은 앞에 배치하고 생활 건물은 뒤편에 배치했다. 황궁은 5문 3조(五門三朝) 5단 월대(月臺), 왕궁은 3문 3조(三門三朝) 3단 월대(月臺) 구조다. 자금성과 경복궁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의 궁은 왕궁이다. 3문 3조의 원칙을 따랐다. 경복궁은 3문(광화문, 홍례문, 근정문)을 거쳐 정전(勤政殿)에 이른다. 3조는 외조(外朝), 치조(治朝), 연조(燕朝)다. 외조는 외국 사신을 맞이하고 문무백관이 조회하는 권역으로 민가의 사랑채에 해당한다. 치조는 왕이 정무를 보는 사정전(思政殿) 권역이다. 편전(便殿)이라고 한다. 연조는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왕의 침소인 강녕전과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 당시 살아있던 대왕대비를 위한 자경전이며 민가의 안채에 해당한다.      

    

궁궐은 왕조의 상징이면서 통치 이념을 담는다. 궁과 궐의 건물 이름은 사서오경 등의 유학 경전에서 그  뜻을 취하였다. 경복궁(景福宮)은 그 뜻을 시경에서 가져왔는데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만년토록 그대의 큰 복(景福)을 누리리라'이다.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세종대부터 부르게 되었는데, 전에는 오문(午門 : 南門)이라고 불렀다. 광화문의 뜻은 서경의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光被四表 化及萬方)에서 유래하였다.     


3문을 거쳐 근정전(勤政殿)에 이르게 된다.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에게 근정전의 유래를 설명한다.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廢)하게 됨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임금으로서 오직 부지런해야 하는 것만 알고 부지런해야 하는 바를 모르면 그 부지런하다는 것이 오히려 번거롭고 까탈스러움에 흘러 보잘것없는 것이 됩니다. 아침엔 정무를 보고(聽政),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訪問),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修令),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여야(安身) 하나니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입니다. 부디 어진 이를 찾는 데 부지런하시고, 어진 이를 쓰는 것은 빨리 하십시오."    

 

근정전에 뒤에 사정전(思政殿)이 나타난다. 역시 정도전이 태조에게 그 의미를 설명한다. "천하의 이치란, 생각을 하면 이를 얻고 생각이 없으면 이를 잃는 법입니다. 대체로 보아 무릇 임금이 한 몸으로서 숭고한 자리에 있으면 만인의 무리들 속에는 지혜롭거나 어리석거나 어질거나 못난 사람들이 섞여 있고, 또한 만사가 번거로워서 시비와 이해가 뒤섞여 가지런하지 못합니다. 임금 된 몸으로서 진정 깊이 생각하고 곰곰이 살피지 아니한다면 어찌 일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처리하며 사람이 어질고 어질지 못한 일을 가리어 나아가게 하고 물러가게 하오리이까. 예로부터 임금으로서 어느 누가 존엄하고 영화롭지 않으려 하며 위태함을 싫어하지 않을까마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가까이하고 좋지 못한 일을 꾀하여 화를 입고 패하는 지경에까지 이름은 생각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람에 있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사람을 쓰고 부리는 일의 극치인 것입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청사진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유교 이념에 투철한 유학자였고 유교 원리를 통치 구조와 이념뿐 아니라 궁궐 건축에도 투영시켰다. 새 왕조가 자리 잡을 한양 신도시를 건설하는 데 수많은 민초들이 부역에 동원되었다. 정도전은 건물을 짓는데 지킨 원칙이 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이불루 화이불치)'. 김부식의 삼국사기 중 백제본기에 나오는 말이다.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  유럽의 건축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그들의 건축에 비해 우리의 옛 건축들이 화려하지 않지만 누추하지도 않음은 민초의 노역을 배려한 선조들의 배려 정치가 배어있지 않는가 싶다. 유교의 원리를 따르되 민본의 유연한 통치술을 발휘한 것이다. 밀물과 썰물의 조수가 바뀌듯 정부는 바뀌게 마련이다. 썰물 정부가 밀물 정부에 남겨야 할 유산은 민초들에 대한 배려 정치가 아닐까 싶다.            

김영상(1994). 서울 六百年. 대학당. 

박종화(1997). 대하소설 세종대왕. 기린원.

유홍준(2017).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서울편 1). 창비.

한정주(2015).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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