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6대 대통령에 당선된 조 바이든 당선인은 2021년 1월 20일 취임을 앞두고 내각에서 일할 각료 인선에 분주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각료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다양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과 유색인 인사의 기용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이다. 눈에 확 띄는 대목은 성소수자와 원주민을 각료로 지명했다는 소식이다.
내무장관에 뎁 할랜드 연방 하원의원을 지명했는데, 할랜드는 뉴멕시코주에 주로 살고 있는 푸에블로족(Pueblo는 스페인어로 '부락') 원주민(Native American)이다. 원주민은 미국 대륙의 원래 주인이다.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백인 다수민으로부터 박해와 탄압을 받은 대표적인 소수민이다. 내무장관의 역할 중에는 미국 원주민에 대한 지원 업무도 포함된다고 하니 그 감회가 특별할 것이다. 교통장관에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을 지명했는데, 부티지지는 성소수자이다.
바이든은 흑인 출신을 첫 국방장관으로 지명했다. 백인 중심의 군대는 흑인이 1, 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을 때는 총도 쏘지 못하게 했다. 군인 취급을 하지 않았다. 후방에서 병참과 세탁, 청소, 탄약 운반 등 노무를 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처음으로 군인으로서 처우를 받았던 흑백 군인 통합 역사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미국의 모든 군인에게 흑인 국방장관이 명령을 내린다. 지구상 대표적인 다문화, 다민족의 미국이지만 이 정도 규모의 소수자 발탁과 기용은 역사상 유례가 없다.
다양성(diversity)은 시대적 대세이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성이 화두로 등장한다. 초연결의 글로벌 시대에 대학도 지리적, 인종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대학이 되고 싶어 한다. 다양성 정책을 실천하면 학생 상호 간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학생들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그런 기회는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 기업에서도 다양한 직원들이 협업할 때 가장 혁신적이고 우수한 기술이 만들어지고 성장할 수 있다. 성, 인종, 장애 여부를 불문하고 다양한 직원을 채용하는 이유이다. 혼혈 파워이다.
다국적 기업에서 CDO(Chief Diversity Officer) 명함을 받는 것은 평범한 비즈니스이다. 기업의 다양성 최고 책임자이다. 포춘 선정 500대 기업 중 20% 정도는 CDO를 두고 있다(2005년 기준). 대학에서는 Office of Diversity & Int’l Affairs를 설치한다. 다양성 및 국제교류처이다. 다양성 지수가 높은 대학에서는 신입생, 재학생, 교직원 등 학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다문화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한다. 학내에는 이중언어사용자를 채용하고 안내문은 다중언어로 표기한다. 다양한 문화를 지닌 학생들의 종교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기숙사 등에 예배실을 구비한다. 기숙사나 교내 식당에서는 할랄(hala) 음식을 준비한다. 노동이 금지된 종교기념일에는 수업이나 시험을 연기한다.
유엔은 다문화국가의 진입 기준을 인구 대비 체류 외국인 비율로 구분한다. 5%를 차지할 때 다문화국가 또는 다문화사회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체류 외국인은 2019년 기준 전체 인구 51,851,427명 대비 4.9%(2,524,656명)이다. 광역시의 인구 기준이 100만명이니 두 개 광역시의 기준을 채우고도 남는 숫자이다. 다문화사회, 다문화국가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다. 체류외국인 비율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외국 노동력 증가, 국제결혼 증가로 인한 결혼이민자 증가, 외국 국적동포의 유입, 유학생의 증가 등으로 지속적인 증가가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지역별로 다문화사회의 역동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서울 구로구, 금천구, 영등포구, 경기도 시흥, 안산, 포천, 화성, 경남 김해, 경주, 충남 천안, 아산, 충북 음성, 진천, 전남 영암 등은 외국인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대부분은 외국인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공단이나 도시와 농촌이 병존하는 도농 지역이다.
경기도 안산시의 시청 홈페이지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5개 언어로 구성되었다. 안산시는 2009년 단원구 원곡동 일대를 다문화특구로 지정했다. '국경 없는 마을’의 Global Village이다. 이곳은 주민 3명중 2명이 외국인이다. 외국인 주민센터가 행정편의를 제공하고 외국인 자율방범대가 질서유지를 맡고 있다. 생업에 종사하는 외국인들이 평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정을 배려하여 주말에 은행문을 열고 병원이 진료한다. 몇 년 후에는 단원구와 같은 특구가 얼마나 생길 지 모를 일이다.
2019년 안산시는 다문화특구 지정 10년이 되었다. 2019년 5월 기준 111개국에서 온 시민들이 안산에 체류하고 있다. 부룬디·아제르바이잔·기니비사우·토고·몰도바 출신도 있다. 낯선 국가의 이름이다. 안산 전체 주민 71만6000명 중 8만6780명이 외국인이다. 2009년 특구 지정할 때에 비해 2.5배 늘었다.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다. 거주 목적도 다양하다. 3만명(36% 정도)은 취업 비자로 거주하고, 유학이나 결혼 이민도 많다. 난민도 1499명이나 된다. 다양성이 만든 인간생태계이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제기 한민족의 국권회복과 독립 의지를 한데 모으기 위해 단일민족, 단일문화를 강조했다. 단일혈통에 대한 자부심이 유독 강하다. 첨단과학기술로 내 혈액검사를 하면 중국계, 일본계, 베트남계 등 다양한 민족들의 피가 섞여있다. 이 세상에 순수한 혈통은 불가능한 것 같다. 민족 앞에 쓰는 수식어로서 '단일', '순수'는 이데올로기이다. 혼혈이 강하고 아름답다. 인정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때 포용국가가 되고 다양성 공화국이 될 수 있다. 역지사지의 다문화사회가 시작되는 원점이다.
2020년 11월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원주민 마오리족 출신 여성 나나이아 마후타(50세 Nanaia Mahuta)를 외무장관으로 임명하였다. 마후타 장관은 얼굴에 마오리족 전통 문신을 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출범을 앞두고 성별, 성적 지향, 피부색, 종교, 민족, 출신 지역에 상관 없는 인사들을 기용하면서 다양성 공화국(Republic of Diversity)을 만들고 있다. 국가의 각료는 민족과 인종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 공공기관, 기업, 교육 기관 역시 지리적, 인종적으로 국가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성은 곧 포용력, 개방성, 자신감의 표현이고, 무엇보다 국가 발전의 에너자이저이다. 다문화사회의 후발 주자로서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미주 국가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성장과 번영의 원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