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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3. 2020

표류기 ①

상선 서기 하멜의 경우

표류는 해상에서 자연 풍파로 배가 본래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현상이다. 이러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결과물이 표류기 또는 표해록이다. 일종의 표류 문학이다. 표류기는 당대 국내외 사회상과 문화상, 그리고 표류인이 경험한 생활문화, 자국과 타국과의 국제 관계 등 생생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자료라고 하겠다(최성환, 2013). 국내 표류기는 20여 종의 표류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하멜(Hendrick Hamel) 표류기만큼 우리나라 사람에게 널리 알려진 책도 드물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축구팀 감독으로 활약하여 한국 축구를 일약 세계 4위로 등극시킨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도 하멜과 네덜란드를 연상시키는 데 기여했다. 하멜은 선원이 아닌 서기(secretary)로 네덜란드 연합 동인도회사의 사무직원이었다. 하멜은 1653년 8월 16일 새벽 1시경 일행 35명과 함께 네덜란드 국적의 상선을 타고 바타비아(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길에 풍랑으로 표류하다 남제주군 대정읍 대야수 해변(상륙지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음)에 표착하였다. 탑승 선원 64명 중 난파로 28명이 죽고 36명만이 살아남았다. 


하멜 제주도 표착 350주년 기념 강연(2003)에 따르면 17-19C 약 200년 동안 네덜란드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출항한 범선 총 606척 중 난파선은 3.7%였다. 통계로 보면 하멜이 탄 범선이 난파한 것은 흔한 사건이 아니다. 난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항해를 감행한 것은 동방 무역이 높은 수익창출의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청, 일본 이외의 외국과의 교류를 엄격히 금지했다. 외국 선박이 항구에 정박하도록 허용하지 않았고, 혹시 육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닻을 내리고 물이나 음식을 요구할 때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호의를 베푼 정도였다. 표착해 온 외국인에 대해서는 국외로 내보내지 않은 것이 국법이었다. 하멜 일행이 효종을 알현하면서 일본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했지만 "이 땅에 들어온 외국인을 내보내는 것은 이 나라의 국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그대들은 이 나라에서 여생을 보내야 하며, 그동안에 생활 용품을 제공하겠다"라고 대답했다.    

 

하멜 일행은 조선을 탈출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을 했다. 그들의 이동 경로는 제주, 서울, 강진, 여수, 남원 등 여러 곳이었는데, 거주지에서 틈만 나면 탈출의 기회를 엿봤다. 서울에서는 청국 사신을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갑자기 나타나 일본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불발로 끝났다. 자칫 조선과 청의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할 뻔도 했다. 난처한 입장이 된 조정에서는 그 사신을 설득시키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하멜 일행이 일으킨 소동 이후로 전라도 병영으로 분산 배치된다.  

    

하멜 일행과 박연(Jan.Janse.Weltevree)의 상봉 장면은 빼놓을 수 없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못지않았을 것이다. 제주도에 표착했을 때 언어가 통하지 않는 관계로 제주목사는 서울에 사정을 써서 보냈다. 조정에서는 박연을 제주도로 급파했다. 하멜보다 25년 전인 1628년(인조 6) 제주도에 표착해 조선인으로 영구 거주하고 있는 박연은 하멜 일행의 외모를 보고 사용하는 언어를 듣고 동향 사람인 것을 알았다. 하멜은 오랫동안 조선에 살다 보니 처음에는 네덜란드 모국어를 더듬거렸다. 뜻밖에 고향 사람과 소식을 전해 들은 박연의 감회는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하멜 일행도 표류민 신세로 고생하다 말이 통하고 고향 사람을 만났으니 얼마나 감정이 복받쳤겠는가. 박연은 하멜 일행을 설득하여 훈련도감의 포수로 편입시켰다. 박연도 고향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었을 것이다.     


탈출을 엿보던 하멜 일행에게 기회가 왔다.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8명은 틈틈이 모은 돈으로 구입한 배로 1666년 9월 표착 13년 만에 여수를 출발하여 나가사키에 도착하였다. 나가사키 행정관은 하멜 일행에게 무려 54가지에 달하는 항목에 걸쳐 심문을 받았다. 표류기에 심문 내용과 답변이 실려있다. 아마도 이런 방식으로 일본은 자국 해역에 표착하는 외국인에게 매우 꼼꼼한 질문을 하고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일본의 국제 정세에 대한 정보 욕구는 대단했다.  심문서를 보면 당시 조선의 사정과 일본의 조선에 대한 인식을 이해할 수 있다.      


하멜의 표류기, 엄밀히 말하면 일지는 문제작이다. 하멜은 귀국한 뒤 1668년  <1653년 타이완에로의 스파르웨르호의 불우한 항해에 관한 일지: 스파르웨르호가 제주도에서 좌초된 이유와 더불어 조선 왕조의 영토, 지방, 도시, 요새에 관한 특별한 묘사>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일지 형식의 보고서다. 네덜란드 연합 동인도회사(바타비아 소재)로부터 정확히 13년 28일분의 체불 임금을 받아내기 위한 기록이다. 하멜은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본국 귀환 배편을 기다리는 2개월 동안 메모 형식으로 일지를 썼고 귀로에 동인도회사 이사회에 제출했다. 13년이 넘는 경험을 한꺼번에 기록했으니 기억력에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한 목적의 기록이라면 이국 땅에서의 경험을 과장하거나 과소하여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힘든 경험은 과장하고 좋았던 경험은 과소하는 방식으로 기록했을 것이다. 일지에 조선의 풍속과 정세에 대해 기록을 곁들인 것은 일지의 신빙성을 부각하기 위한 게산이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멜 표류기는 우리나라에 어떤 의미일까? 하멜과 일행에게는 공무 수행 중 자연 풍파를 만나 상선이 난파되고 낯선 땅에 표착하여 갖은 고초를 겪었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일지 형식의 보고서이다. 그러나 하멜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던 이 표류기는 17세기 이후 외국인의 조선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프로토타입이 되었다. 사람이건 국가건 첫인상과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 법인데 이 표류기를 통해 외국인은 조선이란 국가에 대한 결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표류기에는 "조선인은 낯선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관대하다"는 기록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정적 기록이다. "조선인은 게으르고 남의 물건을 훔치기 좋아하고 사찰은 양반들이 주색잡기에 빠져 난잡하다." 인간적으로 내가 하멜이어도 거의 14년 동안 군역·감금·태형·유형·구걸 등의 모진 고초초와 풍상을 겪었던 곳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하멜 표류기 이전에도 중국 지역에 파견된 선교사나 임진동아시아 전쟁 당시 남해에 파견된 선교사들이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고 하지만, 하멜처럼 책을 출간하여 대중에게 보급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하멜 표류기>는 조선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던 서양 사회에 조선을 알리는 최초의 저서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하멜 표류기> 이후 서양인의 조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실제 무역 교류를 시도하거나 방문이 이어진다.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네덜란드였는데 하벨 보고서를 접하고 1668년 무역선 코리아호<Corea>를 제작하여 무역 거래를 시도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는 자기 나라 언어로 하멜 표류기를 발간하였다. 1797년 프랑스 해양 탐험가 라페로우즈는 조선 해역의 측량과 경위도를 추정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1845년 영국 해군 함장 에드워드 벨처는 제주도와 거문도, 거금도 일대를 정밀 측량하였다. 독일 지리학자 겐테는 1901년 5월 한라산을 등정하고 정상 높이 1,950m라는 것을 밝혀냈다. 1880년 엘른스트 오페르트는 <금단의 나라 조선으로의 여행>, 1886년 미국인 천문학자 펠시벨 로웰은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펴냈다. 


1980년 10월 12일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은 우호 증진을 위해 난파 상륙 지점으로 추정되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해안 언덕에 하멜 기념비를 세웠다. 기록은 기억이나 구전보다 위대하다.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해 기록한 보고서가 역사를 만들었다. 기록하여 남겨야 하는 이유다.                 

    

윤행임. 석재고: 해동 외사 박연

이익태. 지영록: 서양국 표인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하멜표류기.

하멜 제주도 표착 350주년 기념 <항해와 표류의 역사> 특별전 기념 강연회(2003). 국립제주박물관.

 H. Hamel (1813). Narrative and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 신복룡 역주(2019). 하멜 표류기.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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