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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Nov 02. 2021

16세기를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

③ 영국,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

16세기 말에 해당하는 1588년은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영국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해였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를 열면서 신대륙을 개척하고 동방 국가와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유럽에서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렸다. 특히 스페인은 교황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가운데 가톨릭의 수호자로 자처하면서 비가톨릭 국가의 개종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했다. 


영국은 경제, 군사, 외교 등에서 스페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헨리 8세가 로마 교황청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영국 국교회(수장령)를 만들면서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들과 척을 치게 되어 대외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국내적으로 가톨릭과 신교 간의 갈등을 잠재우고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게 되면서 유럽 대륙을 넘어 대서양으로 눈을 돌려 해군을 중점적으로 강화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신념을 구체적으로 준비해나갔다.


사실 무적함대로 상징되는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스페인은 마음만 먹으면 영국 정도는 쉽게 제압하고 가톨릭 국가로 개종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천했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형부와 처제 간이었다. 엘리자베스의 이복 언니 메리 여왕이 펠리페 2세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운이 따랐다면 펠리페 2세는 영국을 가톨릭 국가로 개종하고 영국의 왕이 되려는 야심찬 야망을 실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메리 여왕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유럽 왕실의 결혼 풍습은 근친이 허용되면서, 펠리페 2세는 처제가 되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청혼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펠리페 2세의 저의를 알아채고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라는 말로 단호하게 거절하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펠리페 2세는 영국 여왕에게 앙심을 품었다. 영국-스페인 전쟁은 영국의 네덜란드 독립 전쟁 지원과 신대륙을 둘러싼 이권 싸움 등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펠리페 2세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개인적인 보복도 한 가지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세계 최강 해군을 보유한 스페인과 신생 영국과의 전쟁(칼레해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스페인과 영국의 전쟁은 구교와 신교, 자신감과 신중함, 구식 무기와 신식 무기, 형부와 처제 간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해상 제패를 놓고 벌인 기념비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 전쟁은 스페인이 쉽게 이기리라는 예상을 뒤집고 영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당시 해전에서는 바람의 방향이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다. 바람은 영국에게 유리하게 불었고, 영국은 이를 '프로테스탄트 신풍(神風)'이라고 부르면서 구교에 대한 신교의 승리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여하튼 하느님은 개신교의 손을 들어주었다. 영국은 승전의 기쁨을 라틴어로 메달에 새겼다.  Flavit Jehovah et Dissipati Sunt(God blew, and they were scattered.) "하느님이 바람을 불게 하니 적의 함선들이 뿔뿔이 사라졌다." 신풍의 위력은 지속되었다. 스페인 무적함대는 1596년과 1597년 영국을 재침략하려 했지만 모두 폭풍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신풍은 우리나라 역사와도 관련된다. 13세기말 고려와 몽골 연합군은 2차에 걸쳐 일본을 침략했지만 태풍으로 실패했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가미카제'(神風)'라고 불렀다. 역사는 이렇게 늘 겹친다. 전쟁의 승리를 기점으로 영국은 해양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개척해 놓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해가지지 않는 광대한 식민지를 만들게 된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더우면 추울 때가 있고, 추우면 더울 때가 있듯이 강자는 약자가 되고 약자가 어느 날 강자로 부상한다. 스페인과 영국 간의 관계만이 아니고 인류 역사를 보아도 그렇다. 영원히 세계를 지배할 줄 알았던 로마도 몽골도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랬다. 2차 대전 이후 소련과 함께 세계질서의 형성에 엄청난 힘을 과시하고 소련 해체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해 온 미국도 중국의 부상으로 슈퍼파워의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는 유무형의 요소들이 있다. 그 요소들이란 풍부한 천연자원이나 군사력과 같은 하드파워일 수도 있고, 주변국과의 외교관계나 국민들의 문화 수준과 같은 소프트파워일 수도 있다.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역사 앞에 진실되고 겸손해야 한다. 어떻게 강대국이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쇠퇴하였는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말콤 글래드웰의 대표작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 따르면, 100년 이상된 기업의 특징은 시대환경에 적극 부응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고 단점은 보완해나간다고 한다. 수성이 창업보다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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