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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Dec 03. 2023

결정한다는 것

'내려놓는다'는 말과 동의어

사람에겐 피할 수 없는 공통점이 두 가지가 있다. 죽는다는 것과 선택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라는 것에 대해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선택, 즉 결정이다. 무슨 선택이고 무슨 결정이란 말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자. 우리는 매 시간, 매일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야구 투수가 어떤 볼을 던질까를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무슨 옷을 입을까,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차를 마실까 등 끊임없는 선택의 딜레마에 빠진다. 요즘엔 죽음을 놓고도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선택의 결과이다. 선택하지 않은 것 자체도 선택한 것이다. 


독일어로 '결정'을 의미하는 단어는 'ent-Scheidung'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scheidung에 '이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정을 하는 데 웬 이별 이야기를 하는가. 사람이 결정을 내리는 행위는 무엇인가로부터 떠나는 이별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결정을 하는 것은 단지 여러 개의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행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 결정을 하기 위해 스스로 무엇인가를 내려놓거나 과거와 이별해야 한다. 


세계적인 동기부여가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보도 섀퍼(Bodo Schäfer)는 결정이 왜 내려놓는 것인가에 대한 적절한 사례를 제시한다. 원숭이 사냥꾼과 원숭이에 관한 이야기다. 아프리카에서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한다. 사냥꾼들은 직경 6cm 정도의 나무 구멍에 달걀 정도 크기의 돌을 집어넣어 둔다. 이때 사냥꾼들은 뭔가 비밀스러운 물건을 집어넣는 것처럼 할리우드 액션을 한다. 호기심이 많은 원숭이들은 사냥꾼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사냥꾼이 물러난 뒤 나무 구멍에 손을 집어넣는다. 원숭이는 보물을 손에 넣듯이 돌을 움켜쥔 상태로 손을 빼려고 하지만 돌을 움켜쥔 손은 빼낼 수가 없다.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은 원숭이는 낑낑거리다 사냥꾼에게 잡히고 만다. 


원숭이가 손을 빼내야겠다고 결정을 내린다면 손에 움켜쥔 돌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원숭이는 내려놓지 못한다. 손에 쥔 돌은 과거다. 과거로부터 벗어날 결정을 한다면 돌을 내려놓아야 한다. 과거와 이별하지 못하고 계속 돌을 움껴쥐고 있는 원숭이는 붙잡히고 만다. 왜 결정이란 말에 '내려놓다'와 '이별'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줄 알게 해주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햄릿증후군'도 원숭이가 움켜쥔 돌을 내려놓지 못하고 과거와 이별하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주인공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라고 독백을 한다. 햄릿증후군은 햄릿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우유부단을 상징하는 말이다. 어디 햄릿 뿐이겠는가. 현대인은 결정장애(선택불가 증후군 또는 우유부단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홍수처럼 넘쳐나는 정보과잉의 시대에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저자 역시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는 햄릿이 되고 만다. 브랜드와 상품이 넘쳐나는 매장에서 어떤 옷을 사야 할지 몰라 끙끙거릴 때가 많다. 그럴 때 매장 직원이 최근 유행이라든지 연령별, 취향별에 따라 옷을 골라주면 십중팔구는 그에 맞춰 구매를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저자와 같은 소비자에 서비스를 전문으로 해주는 ‘큐레이션(curation)’ 서비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어디 의류뿐이겠는가. 식당의 음식점에서 음식을 고르는 것도 어려워 큐레이션 서비스를 받는다. 앞으로 세상은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가 진화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뭔가를 결정하는 것은 뭔가를 내려놓는 것이다. 내려놓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와 연결된다. 무소유란  단순히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내려놓지 못해, 즉 과거와 이별하지 못해 결정장애를 겪는 현대인의 특성은 불필요한 생각이나 물건을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고 있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을 맑고 단순하게 하고 필요한 물건만 지니고 있으면 결정을 내리는 것이더 쉬워질 것이다. 미니멀리즘 라이프가 필요한 시대다.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을 줄여서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물건을 적게 소유하게 되면 생활이 단순해지고 오히려 삶이 풍요로워진다. 소유는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잘못된 결정을 내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엄격히 말하면 잘못된 결정이란 없는 법이다. 다른 결정을 했거나 다른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정이 다른 결과를 초래했을 뿐이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한 결정 또한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하나의 어젠다를 놓고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릴 뿐이다.  


이것 하나만 기억하면 우리가 설령 잘못된 결정을 내리더라도 자신에게 관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생존과 존엄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며 결정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결핍을 지니고 있어 그것을 다른 존재로부터 채워 받는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John McCain)의 사례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매케인은 1967년 베트남 전쟁에서 해군 조종사로 작전 수행 중 비행기가 격추돼 적군에 포로가 되었다. 매케인이 포로 생활을 하는 중에 그의 부친 잭 매케인(Jack McCain)은 해군 제독이 되었다. 북 베트남은 매케인에게 조기 석방을 제안했지만, 그는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키면서 동시에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싶지 않아 석방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결정했다. 그러나 매캐인은 포로 생활 중 혹독한 고문을 견디다 못해 미국을 비난하고 북 베트남을 찬양하는 거짓 진술문을 낭독해 녹음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생존을 위한 결정이었다. 매케인의 결정은 선택의 자유가 없는 강요된 결정이었다. 매케인의 위대성은 포로에서 석방된 뒤에 드러난다.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거짓 자백을 숨기지 않고 인정했다. 


사람은 과거와 이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다.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새에 비유하여 왜 과거와 이별해야 하는가를 역설한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나 마찬가지다. 뒤돌아보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 과거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지만 새가 나는 날개에는 무거운 돌을 매다는 것과 같아 더 이상 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과거에서 벗어날 때 과거의 집착을 내려놓을수록 자유롭다. 자유롭고 싶거든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요즘 웰다잉(well-dying)에 관심이 많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방점을 둔다. 인간의 궁극적인 종착점인 죽음에 대한 관심이 폭발한 것이다. 무한한 삶이라면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만 매달릴 것이지만, 유한한 삶에 대한 의식이 고조되면서 생을 잘 마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는 주먹을 쥔 채 어머니 자궁에서 나오지만, 죽을 때는 주먹을 편 채 눈을 감는다. 비로소 마지막 숨을 쉬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내려놓는다는 것, 과거와 이별하는 것은 일생에 걸쳐서도 어려운 행위이다. 


현대인들이 결정장애를 앓고 있다고 하면 이 장애를 피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는 이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다. 한 번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은 다음 번에 내려놓는 일이 훨씬 쉽다. 내려놓는 것은 곧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더 멀리 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웰다잉은 내려놓는 것, 과거와 이별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딜렌슈나이더, 로버트. (2020). 결정의 원칙. 이수정 옮김. 서울: 인플루엔셜. 

류시화. (2012).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서우리 오래된미래.

류시화. (2021).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파주: 더숲.

매캐인, 존 & 솔터 마크. (2009). 고독한 리더를 위한 6가지 결단의 힘. 안혜원 옮김. 살림.

섀퍼, 보도. (2018). 이기는 습관. 박성원 옮김. 서울: 토네이도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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