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창공을 나는 새를 무심히 바라보지만, 새는 그렇게 날기 위해 얼마나 연습했을까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날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새지만, 어린 새가 태어나자마자 잘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도 날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독수리는 높은 바위에서 일부러 새끼를 떨어뜨린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 이치는 그것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힘든 훈련이나 연습 없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세 바퀴 공중회전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연습을 했겠는가.
학습을 새의 날갯짓에 비유한다. 학습(學習)은 학(學)과 습(習)으로 이루어진 단어다. 배울 '학'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한자는 익힐 습(習)이다. 習자는 羽(깃 우) 자와 白(흰 백) 자가 결합한 모습이지만, 갑골문에는 白자가 아닌 해 일(日) 자에 깃 우(羽) 자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習자는 새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새의 날개깃이 태양 위에 있는 것으로 볼 때, 習자는 매우 높이 나는 새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어린 새가 수없이 나는 법을 배우고 익혀 결국엔 태양 위에까지 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논어》 학이편에 여조삭비(如鳥數飛)라는 말이 나온다. 여조삭비는 학습자가 배우고 익히는 기본 원리를 설명한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없이 날갯짓을 해야 하는 것처럼 배우는 사람도 쉬지 않고 연습하고 익혀야 그 이치를 온전히 터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배움과 익힘에는 반복된 노력이 필요하다. 習이 들어간 습관(習慣)도 어떤 행위가 오랫동안 반복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나 버릇을 말하는 것이다.
학습의 근원적인 원리는 인간이나 동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수없이 반복하여 날갯짓을 하는 것이다. 반복학습의 원리, 즉 삭비(數飛)다. 여기서 삭(數)의 의미는 '여러 번 되풀이하다'의 뜻이다. 교문을 삭비문(數飛門)으로, 도서관을 삭비관(數飛館)으로 부르는 학교들이 있다. 교문이나 도서관이라는 이름보다 삭비문, 삭비관이란 이름에서는 학생들이 진리를 파지 하고 꿈을 펼치기 위해 날갯짓을 하는 역동성을 느낀다.
삭비의 원리는 인지기능이 활발한 청소년이건 그 기능이 떨어지는 성인학습자에게도 학습원리의 핵심이 된다. 저자도 그런 경우를 겪고 있지만 성인학습자들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는 무슨 내용인 줄 알아도 책상에서 일어나면 머리가 하얗게 되고 만다고 한다. 세월의 무게를 이겨낼 수 없는 일이다. 이를 극복하는 최상의 방법은 읽고 또 읽으면서 반복학습을 해야 한다. 마치 어린 새가 날갯짓을 하며 비행연습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석봉 어머니의 이야기를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학습자의 본(本)은 누구일까? 저자는 주저 없이 공자라고 말할 것이다. 공자만큼 배우기를 좋아하고 실행하는 데 노력한 위인도 드물 것이다. 학습에 열심이었던 공자는 그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겼다. "열 집이 모여 사는 마을에도 반드시 나만큼 충성과 신의가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충성과 신의를 따지면 최고라고 자신할 수 없지만, 배움에 관해서 만큼은 공자 자신이 최고일 것이라는 말이다.《논어》의 첫 장에서도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공자는 배움에 겸손했다.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해서 부지런히 그것을 구하는 사람이다." 공자는 자신이 천재라거나 신동이 아니라 부지런히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공자는 배움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말만 번지르한 게 아니라 배움을 몸소 행하는 게 인(仁)이라고 했다. 공자는 언변에는 능하지만 게을러서 낮잠을 자는 제자 재여(宰予)를 꾸짖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친 담은 흙손질을 할 수 없다. 옛날에는 남이 뭐라 하면 그 말을 그냥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남이 뭐라 해도 그의 행실을 보고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이것은 재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배움의 자세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뜻이 오롯이 담긴 꾸짖음이다.
학습은 실행을 요구하는 행동지향성이다. 학습은 책에서 배운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학습의 진가는 이론과 경험이 결합상승하는 경험학습에서 나온다. 저자는 경험학습에 관한 한 고 정주영 회장(1915~2001)을 모델로 삼고 있다. 정 회장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정미소와 자동차 수리 등 중소기업을 직접 경영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 등 그가 쌓은 경험학습은 그의 특별한 경영자산이 되었다. 정 회장의 가방끈은 짧지만 여기에 그의 다채로운 경험학습을 더하면 어느 석학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정 회장이 기업을 경영하면서 끄집어낸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그의 특별한 경험학습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신념으로 온갖 난관을 돌파했다. 정주영 회장이 참모들이 경영상황 혹은 기술의 한계를 핑계로 시도하길 꺼려하는 경우에 하던 말이 있다. "해보긴 해봤어?" 그는 실행력을 강조했다. 그 스스로도 그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사회적 지위가 아래라 해도 모르는 것을 물어 배우고 또 배웠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을 실천하는 학습의 대가였다. 정 회장은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학습을 하고 학습의 결과를 실행에 옮기면서 그가 세운 현대를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저자는 정주영 회장과 관련된 많은 일화를 이야기할 때는 부산 유엔군 묘지 단장 녹화 사업과 서산 간척지 사업에 얽힌 에피소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52년 1월, 한국전쟁에 출병한 각국 유엔 사절들이 유엔군 묘지에 내한하여 참배할 계획이었다. 미 8군 사령부에서는 묘지를 파란 잔디로 단장할 계획, 즉 유엔군 묘지 녹화공사를 정주영 회장의 현대건설에 발주했다. 엄동설한에 잔디를 어디서 구한다 말인가. 정주영 회장의 경험학습은 기발한 착상으로 이어졌다. 난관에 봉착할수록 경험학습의 진가는 그 빛을 발휘하는 법이다. 그는 유엔군 사령부로부터 묘지를 파랗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확인을 받은 후, 낙동강 연안의 보리밭을 통째 구입하여 파란 보리들을 옮겨 묘지에 심었다. 참배를 마친 유엔 사절단이 멀리서 묘지를 보았을 때 묘지는 파란 잔디로 단장되어 있었다. 미군 사령부에서는 정 회장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에 원더풀을 연발하며 감탄했다. 그 뒤로 미 8군 공사는 현대건설의 독차지가 되었다고 한다.
1980년에 착공하여 1995년에 완공된 서산 간척지 사업은 우리나라 지도를 바꿔놓은 대역사였다. 면적만해도 여의도의 33배에 달한다. 정 회장의 경험학습에서 비롯된 원대한 구상이다. 정주영 회장은 자서전에서 간척사업 구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고향 통천에서 부친이 밭 한 뙈기를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손이 갈퀴가 되어 자갈을 추리고 괭이질을 했던 그 장면을 잊지 못했다. 정 회장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넓은 농토를 갖고 싶은 부친의 한에 가까운 염원을 풀어드리고 싶은 잠재의식이 발동했고 이것이 간척지 구상의 씨앗이 되었을지 모른다고 썼다. 정 회장은 서산간척지 내 서산농장에 유독관심이 많았는데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산농장은 그 옛날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돌밭을 일궈 한뼘 한뼘 농토를 만들어가며 고생하셨던 내 아버님 인생에 꼭 바치고 싶었던, 이 아들의 때늦은 선물이다. 서산농장은 내게 농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곳은 내가 마음으로 혼으로 아버님을 만나는 나 혼자만의 성지같은 곳이다."
간척지 조성에서 가장 어려운 공정은 방조제를 만드는 일이다. 서산 천수만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 유속이 거세어 현대식 장비로도 손 쓸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난관에 부딪히면 어김없이 정 회장의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그는 유조선 공법을 이용했다. 고철선을 끌어다 물줄기를 막아 놓고 양쪽 방조제에서 바윗덩어리를 투하하며 성공적으로 물막이 공사를 했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생중계될 정도로 국민의 높은 관심을 받았으며, 2백90억 원의 공사비를 절감했다고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학습은 배움과 익힘의 과정이다. 배움의 과정과 익힘의 과정은 별개다. 배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 즉 내재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익힘 과정이다. 학습자는 학습의 과정에서 학(學)만 넘치고 습(習)이 부족하지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날기 선수인 조류의 어린 새가 부모 새의 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학(學)이라면, 그 어린 새가 수없는 날갯짓을 하며 드디어 높은 창공을 날 수 있는 것은 습(習)의 결과이다. 학(學)이 책상머리라면, 정주영 회장의 "하긴 해봤어"는 현장에서 날갯짓을 하는 습(習)이다. 학습이 실행을 위한 과정, 즉 지행합일을 위한 학습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류를 진보시키는 학습의 독창성과 위대성이 아닐까 싶다. 실행중심의 학습을 강조하는 정주영 회장의 어록이다. "대학에서 이론만 조금 배우고 졸업해서 현장에 나가면 이론만 신봉하면서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신 없어한다. 학교에서 가르친 이론대로만 따랐다가는 돈도 시간도 엄청난 낭비를 피할 수 없다." 모름지기 이론과 실제는 조화를 이루고 병행해야 한다. 따로 국밥이면 곤란하다.
맥스웰, 존. (2013). 어떻게 배울 것인가. 박산호 옮김. 서울: 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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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과 나 편찬위원회. (1997). 아산 정주영과 나. 서울: (재)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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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2023). 대전일보. [줌인] 서산 간척지 '정주영 기념관'을 추진하는 까닭은?. 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