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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Nov 27. 2023

비굴했던 권세가 3

대(代)를 이어 주인을 문 개, 홍복원 일가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한 집안이 3대에 걸쳐 조국을 배신하고 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한 사례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이 흔치 않은 역사가 고려 왕조에서 벌어졌다. 이 3대에 걸친 만행은 몽골(원나라)의 고려 침략 시기(1231~1270)와 겹친다. 홍복원(洪福源1206~1258) 가계(家系)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홍복원의 가계는 아버지 홍대순(洪大純)과 아들 홍다구(洪茶丘) 등 3대에 걸쳐 고려를 괴롭히고 자신의 영달을 꾀했다. 질긴 악행의 세습이다. 홍복원의 가계에는 권력자에게 빌붙어 약한 자를 괴롭히는 유전자가 세습되었나 보다. 아버지 홍대순은 몽골군이 강동성(江東城, 평양 동쪽 강동군에 있던 성)으로 쫓겨 왔던 거란의 잔당을 칠 때 마중 나가 몽골군에 투항했다. 아들 홍복원은 몽골의 1차 침입 때 인주(麟州,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의 도령(都領, 지역의 군대를 통솔하는 최고 지휘관)으로 있었는데, 그는 솔선하여 그 주와 현의 군민들을 거느리고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이(撒禮塔)에게 투항했다. 손자 홍다구(洪茶丘)는 고려와 일본이 내통하고 있다는 거짓정보를 원나라 황제에게 올려 일본 정벌에 나서게 만들었다.


고려를 배신하고 원나라에서 입지를 튼튼히 한 홍복원의 권력욕과 만행은 끝이 없었다. 그는 1233년 필현보(畢賢甫)와 함께 서경(현재의 평양)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고려 황실이 강화도로 천도한 뒤 텅 빈 개경을 노렸다. 홍복원은 강화도를 제외한 고려를 통째로 원나라에 바칠 계획이었을 것이다.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홍복원은 다시 원으로 도망갔다. 그는 목숨이 위태롭거나 세가 불리하다 싶으면 원으로 피했다. 언제든 몸을 맡길 안가(安家)가 있었고 원은 그의 든든한 뒷배가 되었다. 원은 고려의 약점을 들춰내며 충성을 다하는 홍복원에게 고려군민만호(高麗軍民萬戶)의 관직을 주고 투항해 온 고려군민을 다스리게 하였다. 원나라에서 승승장구하던 홍복원은 마음 놓고 고려를 모함하고 침략의 구실을 만들고 고려에 해악이 되는 갖은 술수를 꾸몄다. 홍복원과 같이 원나라에 빌붙어 고려와 고려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정치세력을 부원배(附元輩) 또는 부원세력(附元勢力)이라고 한다. 

 

고려에서는 홍복원과 같은 부원배들을 어떻게 다루었을까? 고려에서는 원나라의 뒷배를 믿고 갖은 행패와 모략 그리고 수탈을 일삼는 홍복원을 달래기 위해 아버지 홍대순을 대장군으로 삼고 동생 홍백수에겐 낭장(郎將, 중앙군 조직에서 중랑장 바로 아래 직위인 다섯 번째 계급) 벼슬을 주었다. 홍복원에게 끊임없이 뇌물을 보내 비위를 맞췄다.  고려에서는 홍복원을 처단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는데, 어이없게도 홍복원은 그가 충성을 다했던 원나라에서 원나라인들에게 죽었다.   


원나라는 강화도로 천도하여 항복하지 않고 항전을 계속하는 고려 고종에게 친조(親朝, 고려 왕이 원나라 황제를 직접 찾아와 알현하는 것)를 요구하였는데 대신 황족 왕준(王綧)이 원나라에 볼모(몽골어로 뚤루게(禿魯花))로 갔다. 고려는 왕준을 고종의 친자식이라고 속여 몽골에 보냈다. 왕준은 원나라에서 꽤 오랫동안 홍복원의 집에 머물렀다. 묘한 일이다. 볼모가 된 황족과 매국노 홍복원이 같은 집에서 살았던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왕준과 홍복원은 원나라에 투항했거나 귀순한 고려인의 통솔권을 놓고 적대감정이 생겼다. 


원나라와 고려 사이에 상황이 바뀌면서 원나라와 홍복원의 사이에도 변화가 생겼다. 1259년 고려와 원나라의 강화(講和)가 성사되면서 원나라는 홍복원을 이용할 가치가 적어졌다. 원은 고려 황족, 즉 고려 왕조를 대표하는 인물에게 고려군민을 통솔하고 싶었다. 원나라는 홍복원이 통치하던 요양과 심양 일대의 고려군민을 나눠 왕준으로 하여금 심양에 살던 고려군민을 지배하게 했다.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홍복원이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그는 왕준과 권력 투쟁을 벌이는 중에 고려에서 귀순하는 고려인을 원나라 조정 몰래 병합하려 획책하기까지 했다. 이럴 때 관전 포인트는 누가 더 확실한 권력자의 총애를 받느냐였다. 홍복원이 원나라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왕준 역시 원나라 황녀와 결혼하여 권세가 만만치 않았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팽배하게 겨루는 세력들이 권력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한쪽에서 무리수를 두기 마련이다. 홍복원은 무당을 불러 나무 인형을 만들어 왕준을 저주하게 했다. 홍복원은 흑주술, 즉 사악하고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했다. 이 사실이 알려져 원나라 황제에게 불려 간 홍복원은 변명을 늘어놓은 뒤 돌아와 왕준에게 거칠게 따지며 면박을 주었다. 고려사 열전의 홍복원과 왕준에 대한 기록이다. 


원나라의 뒷배를 믿고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홍복원이 왕준에게 “공(公)이 나에게 은혜를 입었던 것이 오래이면서 어찌 도리어 적에게 참소를 시켜서 나를 모함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이른바 기른 개가 도리어 주인을 문다는 것입니다(所謂所 養之犬, 反噬主也)”라고 훈계하듯 말했다. 홍복원은 고려의 왕족을 개로, 자신을 주인에 비유했다. 곁에서 이 말을 들은 왕준의 처인 황녀가 홍복원에게 
“너는 너의 나라에 있을 때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더냐?”라고 물었다. 홍복원이 “변성(邊城)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황녀가 또 묻는다. “그럼 우리 공은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더냐?” 홍복원이 “왕족이십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황녀는 “그렇다면 참으로 우리 공이 주인이며 네가 참으로 개이거늘 도리어 공을 개라고 하면서 주인을 물었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나는 황족인데 황제께옵서 우리 공을 고려 왕족이라고 하여 그와 혼인시켰다. 그리하여 나도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모시며 딴마음을 품지 않았다. 공이 만약 개라면 어찌 어떤 사람인들 개와 같이 사는 자가 있겠느냐? 내 마땅히 황제께 아뢸 것이다”라고 꾸짖으며 원나라 황제에게 홍복원의 교만을 알렸다.


원나라 황제 앞에 불려 간 홍복원은 황제에게 울며불며 머리를 조아리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황제의 명을 받은 칙사가 홍복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칙사는 장사 수십 명을 시켜 홍복원을 발로 밟아 죽인다. 매국노 홍복원의 비참한 최후였다. 진짜 주인인 고려를 배신한 개가 그토록 충성을 다했던 원나라에 의해 죽었다. 그의 처와 아들들도 압송당하였고,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다. 한순간의 처참한 몰락이었다. 복원(福源)이란 한자어의 뜻은 '복의 근원'인데, 홍복원은 고려와 고려인에겐 악의 근원이 되었다. 


홍복원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었다. 아들들은 심양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면서 고려와 계속하여 대립하였다. 그중 홍다구(1244~1291)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매국노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몽골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황제도 홍다구에게 홍복원의 관직을 계승해 원나라 고려군민에 대한 관할권을 내려주었다. 원나라는 왕준에게 주었던 고려군민 통솔권을 빼앗아 홍다구에게 주었다. 홍다구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악감정을 품고 끊임없이 고려를 모함한다. 홍다구의 만행과 패악질은 그의 아비 홍복원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홍다구는 항몽(抗蒙)의 상징이었던 삼별초 항쟁을 진압하는 등 대대손손 주인을 무는 개로서 원나라에 충성을 다했다. 


인간은 어려움에 부딪히면 그 본성이 드러난다. 우리 민족의 수난기에 조국을 배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를 이어 그 조국을 침략, 수탈한 매국노들을 보며 염량세태(炎涼世態)의 권력무상을 생각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한다. 꽃은 십일을 넘겨 피기 어렵고, 권력은 10불을 가지 못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다. 평범한 진리다. 홍복원의 시조는 고려개국공신 홍은열(洪殷悅)이다. 고려개국공신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조국 고려를 배반하고 원나라에 충성하며 침탈에 앞장섰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유승훈. (2016). 조선 궁궐 저주 사건. 파주: 글항아리.

고려사. 권제27, 권제43.

이한우. (2009). 조선일보. [이한우의 역사속의 WHY]고려의 매국노 '홍씨 3代'. 4월 25일.

장상록. (2016). 전민일보. 어느 반역자의 최후. 11월 25일.

홍복원. db.history.go.kr.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홍복원. http://contents.history.go.kr/ 우리역사넷

<무신>. (2012).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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