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혼자 거저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한자 사람인(人)도 두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댄 모양이다. 헬렌 켈러(1880~1968)는 생후 1년 8개월 만에 뇌막염에 걸려 시각과 청각을 잃고 언어장애까지 갖게 된 삼중장애아였다. 켈러는 앤 설리반(1866~1936)을 만나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영화 <The Miracle Worker(기적의 일꾼)>은 설리반의 켈러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영화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켈러의 손바닥에 물을 떨어뜨리고 'water'라는 단어를 써주는 방식으로 언어를 익히게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보이거나 만져질 수 없다. 그것들은 오직 마음속에서 느껴질 것이다"라는 헬렌 켈러의 어록은 설리반으로부터 언어교육을 받으면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동물을 사육하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교육을 시킨다. 설리반은 교사가 왜 '기적의 일꾼'이며, 인간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교육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오천석은 진정한 의미의 교사가 지녀야 할 사랑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가르침을 받는 받는 자, 즉 제자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은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는 사람과의 마음 사이에 놓이는 다리다. 이 다리를 거쳐야 한 인격이 다른 인격에 부딪칠 수 있고 마음의 공감이 일어날 수 있다. 둘째, 하는 일에 대한 사랑이다. 교직은 외부로부터 부과된 직업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요, 양심의 부름을 받아 짊어진 십자가다. 즉, 교직에 대한 소명감으로 스스로 걸머진 짐이다. 사랑이야말로 교직에 대한 정열과 헌신의 원천이다. 셋째, 교사의 사랑은 곧 진리에 대한 사랑이다. 교사는 진리의 영원한 추구자며, 우주와 자연과 세계가 숨기고 있는 비밀의 발견자요, 인간사회의 질서와 개인 행위의 기준이 되는 가치의 탐구자다(오천석, 46-50).
오천석이 말하는 세 가지 유형의 교사 사랑은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가 말하는 '만남(encounter)'의 교육철학과 닮았다. 영어 'encounter'는 예상치 못한 뜻밖의 만남을 의미한다. 부버에게 교육은 교사와 학생 각각의 인격이 서로 만나는 것을 의미하며, 교사와 학생의 참된 관계는 교육내용에 선행(先行)한다. 훌륭한 교사와 훌륭하지 못한 교사의 구분은 교육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인격에 있다고 보았다(강선보, 213-230). 교육전문가들은 오늘날 학교위기의 근원에는 교사를 지식전달자로, 학생을 지식을 수용하는 기계로 수단시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사랑으로 가르치는 교사의 인격과 사랑으로 감화되는 학생의 인격이 서로 부딪쳤을 때 교육적 상호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학생은 교사의 인격적인 사랑을 확인하게 되면 공부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저자 자신이 실제 경험을 했다. 저자도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학교에 가지 않고 이른바 땡땡이를 쳤다. 당시에는 학생 수가 많아 콩나물 교실에 수업도 1부, 2부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반에서 한 두 명 빠진다고 해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학습부진아에 대한 대책도 없는 시절이었다. 저자에게 학교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기본적으로 읽고, 쓰고, 셈하는 3R's를 잘하지 못하니 학교생활이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방과 후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복도에서 벌을 받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것도 어느 정도였다. 또 저자가 원인이 되어 반전체가 벌을 받는 것도 부끄러웠다. 군대 용어로 고문관이었다.
5학년 1학기 자연시간에 처음으로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물고기 구조를 묻는 질문에 친구들이 답을 하지 못해 저자에게까지 차례가 왔고 알아맞혔다. 자신감이 바닥이었던 저자는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고 목소리는 모기소리보다 작았다. 학교를 가는 대신에 냇가에서 고기 잡으면서 시간을 보냈으니 물고기에 관한 한 박사급이었다. 그때 터득한 물고기 잡는 기술을 강의 시간에 풀어 이야기한다. 별명도 어신(魚神)이다.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는데 집으로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몸이 구름을 탄 듯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말이 맞다. 담임 선생님이 저자와 같은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확인한 것은 최고의 학습동기로 작용했다.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칭찬을 듣고 싶어서 공부를 더 하게 되었다.
저자 역시 교육자로서 설리반에 대해 경외감을 갖는다. 그녀는 한때 자신이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녀는 다섯 살 때 트라코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눈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았고 그녀의 시력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다행하게도 그녀는 시각장애인 학교 재학 중에 재수술을 받아 시력을 회복하였다. 장애를 겪은 선험자로서 설리반은 켈러가 어떻게 장애를 극복하고 그를 어떻게 지도할지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병상련이고 이심전심이다. 설리반과 헬렌이 오늘날 부러운 사제지간의 전형이 된 것은, 설리반이 삼중장애아 헬렌을 온전한 인격체로 대했고 헬렌의 잠든 영혼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본질은 영혼과 영혼의 접합이며,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라는 부버의 교육철학을 되새긴다.
강선보. (2018). 마르틴 부버 만남의 교육철학. 서울: 박영스토리.
오천석. (1996). 스승. 서울: 배영사.
Garrett, Leslie. (2004). Helen Keller. NY, New York: DK Publishing, Inc.
영화. <미라클 워커>.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