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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과 항우의 리더십

by 염철현

유방과 항우는 여러 면에서 대척점에 놓여 있는 관계로 둘의 리더십을 비교하는 것은 리더십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약방의 감초와 같다. 사마천은 <사기> 회음후 열전에서 한신의 말을 빌어 유방과 항우를 비교한다. 한신은 유방과 항우의 사람됨과 그들의 리더십 특성까지 설명하고 있다. 한신의 말을 따라 저자의 생각을 덧붙여 보자.


항우는 귀족출신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자애롭고 말씨가 부드러웠다. 부하가 병이라도 걸리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줄 정도로 정이 많았다. 지극히 단순하며 감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나 항우는 부하를 믿고 일을 맡기지 못해 부하가 공을 세워 벼슬을 주어야 할 경우에도 인장(印章)이 닳아 깨질 때까지 만지작거리며 선뜻 내주지를 못한다. '인장이 닳아 깨질 때까지 만지막거린다'라는 표현이 흥미롭지만, 왜 그렇게 상을 주어야 할 때 주저했을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도 타이밍과 명분이 중요한데 말이다. 아마도 이 세상에 자신의 절륜한 무예와 겨룰 사람은 없으며 자신이 세운 공로에 비교했을 때 부하가 세운 그 정도의 전공에 상을 주어야 하는가 하는 강한 의구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개와 용맹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항우의 고질적인 유아독존의 자만심과 오만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천하제일의 용사라는 삐뚤어진 신념은 진나라에서 귀순한 20만 명의 군사를 생매장했다. 그들에게 먹일 식량이 없고 반역할 기미가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유방은 가난한 농민 집안의 출신으로 소탈하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분방하고 천연덕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젊은 시절에 협객 노릇을 하며 수하를 거느린 덕에 부하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귀신같이 알아내는 센스를 가졌다. 유방은 도량이 넓고 의리를 중히 여기고 참모들의 의견을 잘 듣는 편이고 상벌을 엄격히 했다. 유방은 인장의 먹이 채 마르기도 전에 부하에게 상을 주는 전형적인 덕장의 모습이다. 한마디로 부하의 특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개성과 재능을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지도자다. 그러나 항우군에게 쫓길 때 마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함께 탄 아들과 딸을 떠밀쳐버리는 지독히 이기적이고 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초한대전에서 역사는 유방의 손을 들어주었다. 유방이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항우를 제압한 뒤 통일 중국의 왕좌에 오른 결정적 요인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요인을 생각해 본다.


첫째, 사람됨됨이, 즉 인성의 차이다. 항우는 무력이 최고의 무기라고 생각하고 강압적인 리더십을 구사했다. 무엇보다 성격이 급하고 우둔할 뿐 아니라 귀가 얇아 간신들이 부추기면 넘어가버리고 만다. 간신을 이기는 충신은 없다고 한다. 유방은 도량이 넓고 인품이 온후하고 관대하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한다. 그러니 인재들이 유비 진영으로 모여들고 자신을 알아주는 유방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양금택목(良禽擇木)이라고 하지 않던가. 현명한 새가 나무를 가려 둥지를 트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면서 키워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한신, 진평, 경포도 항우 진영에서 유방 진영으로 귀순한 사례다.


둘째, 부하에 대한 믿음의 차이다. 항우에게는 당대 최고의 책사 범증이 있었다. 범증의 혜안과 지략은 장량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러나 항우는 아부(亞父)라 부르던 범증조차 의심하여 내쳤다. 상대방의 반간계에 넘어가 단순하고 우둔한 항우다운 처신을 했다. 굳이 항우의 결정적 실수 세 가지를 꼽는다면 의제 시해, 진나라에서 귀순한 병사 20만 명을 살해한 신안대학살, 그리고 범증과의 결별일 것이다. 범증은 백만 군사와도 바꿀 수 없는 기재(奇才) 중의 기재였다. 항우와 대조적으로 유방은 부하들을 믿고 맡겼다. 적재적소의 용인술을 구사하여 그들이 맡은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지원했다. 물론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쟁취한 후에는 내부 분열로 공신들을 불신하고 죽이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대체로 부하들을 신뢰했다.


셋째, 민심을 누가 더 얻느냐였다. 항우는 무력을 기반으로 적을 제압한다. 항우 군대가 지나간 자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서 학살과 파괴가 일어난다. 항우는 의제(義帝)를 시해하고 강물에 던져버리는 패악질을 서슴지 않았고, 진나라 귀순 병사 20만 명을 생매장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마치 항우의 행동에서 분노조절장애의 특성을 보는 것 같았다. 이 두 사건은 항우가 포악하고 살인을 밥 먹듯 한다는 낙인을 찍기에 충분했다. 유방은 항우와는 정반대로 전쟁을 치렀다. 싸우고 죽이는 방식 대신에 적군을 설득하고 회유하며 성문을 스스로 열고 나오도록 만들었다. 점령지에서는 백성을 괴롭히고 재산을 빼앗는 짓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곡간을 열어 배고픔을 해결했다. 이러니 백성들은 유방군을 반기고 현지 사람들로부터 유무형의 도움을 받았다. 민심을 얻지 못하고 백성의 원한을 산 항우가 해하(亥下) 전투에서 패해 한나라군에게 쫓길 때 촌부에게 강동으로 가는 길을 물었는데 촌부는 다른 방향으로 길을 안내했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민심 이반은 곧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의 몰락으로까지 이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항우와 유방이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을 보면서 맹자와 양나라 양왕이 나눈 대화에 주목한다.


양왕: "누가 통일할 수 있습니까?"


맹자: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통일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천하통일의 주인공은 사람을 해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초한쟁패기에 누가 사람 죽이기를 덜 좋아했는가? 그 답의 주인공이 진시황 이후 흩어진 나라를 재통일하게 되었다.


항우와 유방의 리더십 스타일은 오늘날에도 소중한 함의를 제공한다. 역사의 선택을 놓고 보면 사필귀정(事必歸正), 즉 처음에는 만사가 올바르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결국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르게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확인하게 된다. 전쟁을 하든 국가를 경영하든 간에 항우와 같이 힘이 좋고 무예가 뛰어난 한 사람에 의존하기보다는 유방과 같이 다양한 영역의 인재들이 그들의 전문성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역사의 승자는 자신과 다른 인간 유형에 대한 관대한 도량과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가진 인재 등용에 달려 있음을 실감 나게 한다. 항우가 가진 하드 파워와 유방이 가진 소프트 파워의 결합이야말로 최강의 조합일 것이다.


뤼스하오. (2015). 진시황. 이지은 올김. 서울: 지식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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