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축(1457년) 10월 꿈에 신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초나라 회왕(懷王)의 손자 심(心)인데, 서초패왕(西楚霸王)에게 살해되어 빈강(郴江)에 잠겼다'라고 말했다. 나는 꿈에서 깨어 놀라며 생각하기를 회왕은 초나라 사람이요, 나는 조선 사람으로 두 지역의 거리가 만여 리가 될 뿐 아니라 시간도 천 년이 훨씬 넘는데, 꿈속에 와서 감응하니 이것이 무슨 상서로운 일일까? 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정녕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이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문(文)을 지어 조문한다." 위 글은 조선 전기 성리학자요 관료였던 김종직이 작성한 조의제문(弔義帝文)의 일부 내용이다. 김종직이 초패왕 항우에 의해 시해된 초나라 의제를 조문하는 내용이다. 왜, 조선의 사대부가 죽은 고대 중국의 황제를 위해 조문을 지었을까? 그것도 꿈에 나타난 사자의 말을 빌어서 말이다.
조의제문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엄청난 정치적 메타포가 될 수 있다. 조의제문에 등장하는 의제는 단종이고 항우는 세조를 빗댄 것으로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1453년)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200년대에 항우가 시해한 의제가 까마득한 시간을 거슬러 조선땅에서 단종으로 환생한 것이다. 그리고 조의제문은 조선 최초 사화(士禍)의 원인을 제공한다. 왕조국가에서 그것도 성리학의 이념을 통치기반으로 삼고 있는 왕들은 왕위계승의 적법성과 정통성을 그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분명히 조의제문은 언젠가 정치적 회오리를 가져 올 시한폭탄이었다.
사실, 조의제문은 무오사화(1498년)의 원인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김종직은 성품이 강직하면서 관리로서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아 위로는 왕으로부터 아래로는 후배와 부하들에게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평소에도 세조가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일을 두고 비판적인 말을 해왔다. 왕조시대에 역모급에 해당하는 민감한 말을 해도 최고권력자가 대강 넘어가고 화자를 신임하면 문제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의제문을 쓴 김종직과 그를 원수로 생각했던 유자광의 인간관계에서 그만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유자광이 경상도관찰사를 지낼 때 함양 학사루에 자신이 쓴 시를 현판에 걸게 했다. 일이 잘못되려고 그랬던지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있으면서 유자광의 현판을 떼어 아궁이에 불사르게 했다. 현판에 새겨진 유자광의 시가 소인배의 글이라는 이유였다. 원래 김종직은 유자광을 미워했다. 유자광이 남이 장군을 역모죄로 모함하여 죽인 일 때문에 그를 혐오하고 경멸했다.
김종직이 현판을 떼고 불을 질렀다는 소문은 유자광에게도 전달되었다. 가뜩이나 서자로 태어난 것 때문에 출신성분에 열등감을 가진 유자광은 김종직을 증오하게 된다. 유자광과 김종직의 인간관계가 악화되면서 유자광은 언제 기회가 되면 단단히 앙갚음할 것을 다짐했다. 열등감을 가진 사람의 열등의식을 건드리면 사달이 나기 마련이다. 마치 잠자던 사자의 코털을 뽑는 격이고 벌집을 건드는 이치와 같다. 유자광은 김종직이 왕의 신임을 받을 때는 조용히 있다가 자신이 연산군의 신임을 받고 권력의 실세로 부상하면서 보복을 단행한다. 그리고 그 보복의 단서는 조의제문이었다.
김종직이 죽고 그의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사초에 수록한 조의제문의 내용에 문제가 제기됐다. 어떻게 보면 조의제문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 또한 김일손과 이극돈의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이극돈은 자신이 상중에 술을 마시고 기생을 출입시킨 것을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다 조의제문의 내용을 문제삼은 것이다. 이극돈은 김일손에게 자신과 관련된 부정적 내용을 빼달라고 했지만, 김일손이 거부하면서 사달이 난 것이었다. 너 죽고 나죽자는 심보다.
당시 성리학의 기조는 사람파와 훈구파로 나눠졌는데, 유자광, 이극돈 등의 훈구파가 조의제문을 이용하여 김종직, 김일손 등 사림파를 대대적으로 쫓아내는 정치적 사화로 비화했다. 연산군은 유자광의 무고를 그대로 믿고 사림의 사대부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조의제문을 작성한 김종직의 묘를 파헤치고 부관참시했다. 무덤에서 관을 꺼내어, 그 관을 부수고 시신을 참수했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그 반복의 단초는 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그리고 부정적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더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