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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3. 2020

전염병의 역사 ①

초연결 시대의 전염병과 대응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으로 78억 인류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작년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이 바이러스가 5대양 6대주를 전염시키는 pandemic이 되었다. 과학자들의 예측이 번번이 빗나갈 정도로 변이와 전파력이 역대급이다. 돌이켜보면 인류 역사는 전염병과의 싸움의 역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균과 바이러스에 관한 한 ‘완전 퇴치’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환경이 갖추어지면 다시 발병하는 것이 세균이고 바이러스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지구 온대화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으면서 그 안에 잠자고 있던 세균들도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페스트, 말라리아, 콜레라, 천연두, 황열병, 독감 등 세균과 바이러스는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잠시 사라졌다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수많은 바이러스 중에서도 ‘흑사병’으로 알려진 페스트는 장기간 천문학적인 숫자의 생명을 앗아간 인류 최악의 역병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전염병에 감염된 환자는 종국에는 피부가 검은색으로 변색되면서 사망에 이른다고 해서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페스트는 1347년 최초 발병이 시작되어 1844년에야 퇴치되었다. 무려 5백 년이다. 정말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사건이다. 우리나라 역사로는 고려 말에 시작하여 조선 말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페스트의 전파 경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1347년(대부분 역사에서는 ‘1340년대 말’로 표기) 여름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와 벼룩이 흑해 크리미아 반도 카파항에 정박해 있던 제노바 상선에 기어올라 유럽에 전파되었다. 두 번째는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 지대에서 시작하여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두 가지 설을 조합하면 페스트는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하여 실크로드(육지)를 통해 이동했고 선박(바다)을 경유하여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페스트의 역학 구조는 최초로 감염된 쥐가 죽고, 죽은 쥐에서 기생하던 벼룩이 살아서 인간에게로 이동하여 이 벼룩이 인간의 살을 물어뜯고 2~6일 잠복기를 거쳐 병을 전염시킨다. 이 전염병에 감염된 쥐벼룩은 쥐의 피를 걸신들 듯이 빤다. 피를 빨리던 쥐가 전염병으로 죽게 되면 벼룩은 필사적으로 다른 음식을 찾게 되고 인간 숙주를 발견하게 되면 인간에게로 이동한다. 인간은 페스트를 직접 다른 인간에게로 옮길 수 없다. 벼룩은 곡물이나 모직물과 같은 부드럽고 하얀 옷감 속에서 50일까지 추위를 피해 숨어 있을 수가 있다. 


14세기 곡식과 옷감은 모두 무역의 주요 품목이므로 이 물품을 운송하는 것은 곧 인간에게 전염병을 퍼뜨리는 방식이 되었다. “뛰어봤자 벼룩”이란 속담이 있지만, 벼룩이 이 말을 들으면 콧방귀를 뀌게 될 것이 분명하다. 벼룩은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은밀하게 잠복하고 있다 때를 기다린다고 하니 고도의 지능범임에 틀림없다. 파리가 말꼬리에 붙어 천리를 이동하는 기미창승의 전략이다. 페스트가 무서운 또 다른 이유는 감염자가 숨을 쉬거나 피를 토할 때 나오는 작은 물방울로도 감염될 수 있다. 요즘 <코로나 19>도 비말(飛沫)과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미세한 물방울로 감염된다고 하는데 거의 유사한 현상이다.      


1630년 유럽의 어느 집을 관찰한 기록이 전해진다. “100마리가 넘을 것으로 보이는 많은 쥐들이 집집마다 살고 있었다.... 이들은 굶주린 나머지 문과 창틀을 갉아먹었다.” 6, 70년대 농촌의 실상과 겹친다. 쥐들이 너무 많았고 밤낮으로 그들과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밤이면 천장 위에서 왕복 달리기를 하는 쥐들의 경주를 들으면서 잠을 잤고, 자기 전에 의례히 세리머니가 있었는데, 광(고방)에 저장해 놓은 곡식들을 먹으려고 침입한 쥐들을 잡으려고 쥐와 숨바꼭질을 했다. 집 주변과 논밭에도 쥐덫과 쥐약을 놓거나 뿌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전쟁의 상대가 어디 쥐뿐이었을까? 겨울철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또래들과 이, 벼룩, 빈대 등의 전염병의 매개 역할을 하는 녀석들을 잡곤 했다. 끔찍한 기억이지만 지질히 도 가난했고 보건위생 의식 수준도 낮았다.      

페스트가 휩쓸고 지나간 유럽의 인구는 지역에 따라 인구의 3분 1에서 3분의 2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 16세기가 돼서야 페스트 창궐 이전의 인구가 회복되었다고 하니 천문학적인 숫자의 인구가 사라졌다. 실제 유럽보다 중동 지역의 이슬람 문명권에서 피해가 더 컸다. 이는 서구와 유럽인들이 쓴 역사책으로 공부한 사람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일 수 있다. 오늘날도 코로나 소식은 선진국 중심이다. 또 하나 안타까운 점은 어린이와 임산부가 페스트의 표적이 되었다. 의학적으로는 1894년에 이르러서야 페스트균의 원인을 규명하게 되었다.      


오늘날 인류는 고도화된 첨단기술 덕분에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코로나 19>에 감염된 환자와 이로 인한 사망자 숫자가 얼마인가를 실시간 생중계로 시청하고 있다. 이 바이러스를 퇴치시킬 백신 개발을 위한 노력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원인을 알면 방법도 금세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바이러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닌가 보다.      


이 전염병으로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학자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질서’ 또는 ‘새로운 기준’(New Normal)에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많은 석학들이 진행형인 <코로나 19>가 인류에게 끼칠 영향과 교훈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총·균·. 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 박사의 지적에 특별히 공감이 간다.           


 “모든 국가와 지역이 연결된 초연결의 세계화 시대에는 과거처럼 한 지역 문명의 붕괴에 그치지 않고 지구 전체 차원에서 문명 붕괴의 위협을 받게 된다. 코로나를 계기로 세계 각국은 한 나라가 자기 보호를 위해 문을 닫아걸더라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느 나라가 자기 국경 안에서 코로나를 퇴치하더라도 다른 나라에 코로나가 잔존한다면 언젠가 다시 감염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문제에는 글로벌 대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류가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전염병을 두고 걱정과 우려를 하지만,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미국과 중국 등의 초강대국이 ‘자국 보호주의’내지는 ‘자국우선주의’에 매몰되어 전대미문의 글로벌 위기에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더십의 부재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G2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고 촘촘하게 연결된 세계를 ‘보호’와 ‘이익’이라는 가위를 들이대 그 연결망을 끊으려고 하니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리려는 우(愚)를 저지르고 있다. 위기 앞에 겸손하고 위기를 인정하면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지혜를 모아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찾아내기 바랄 뿐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 형편에 맞게 행동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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