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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3. 2020

전염병의 역사 ②

신대륙과 구대륙의 조우

서구와 유럽 중심의 역사가들은 15세기 이후 탐험가들의 지리상의 발견이나 신항로 개척을 ‘대항해 시대(Age of Discovery)’라는 말로 표현한다. 말이 대항해 시대이지 속내를 들여다보면 철저히 국가 이익(national interest)을 앞세운 해외 식민지 개척의 시작이다. 신항로 개척에 선두주자였던 포르투갈, 스페인을 비롯한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제국들은 커피, 차, 담배, 설탕, 향신료 같은 열대 지역의 원료를 확보할 목적으로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섰다. ‘필요는 발명의 원천이다’라는 격언이 여기에 해당한다. 종교조차도 제국의 해외 약탈의 수단이 되었다. 유럽인들은 신대륙 발견이라고 하지만 이 말 또한 어폐가 있다. 이미 그 땅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원주민 입장에서는 누가 누구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적절한 용어 선택은 신대륙과 구대륙 간의 조우(遭遇) 정도가 아닐까.     

 

마르코 폴로(1254-1324)나 이븐 바투타(1304-1368)와 같은 여행가들이 인도,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고 쓴 책들과 선교사들의 구전은,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았다. 신대륙의 식물과 광물들은 유럽 제국의 욕망을 채우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되었고 이후 서구가 근대화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상상력이 현실이 된 것이다. 영어 imagination은 ‘상상력’을 의미하지만, 단어 끝에 ‘nation(국가)’이 괜히 붙어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과거나 현재도 개인이나 국가에게 상상력은 중요하다. 

     

신대륙 사람들은 구대륙 사람들과의 조우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인류의 역사는 곧 교류와 이동의 역사다. 사람이 교류를 위해 서로 접촉하거나 이주를 하게 되면 유무형의 것들도 함께 이동한다. 유럽인과 원주민들의 만남은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시인 정현승도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에게 세균과 바이러스를 전염시켰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청정지대, 신대륙에서 인간 숙주를 만난 것이다.    

  

세균과 바이러스 항체가 있는 구대륙 사람과 항체가 없는 신대륙 사람이 만났을 때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학자 우드로우 보라(Woodrow Borah)에 따르면, 1518년 스페인 코르테스 장군이 멕시코의 아즈텍 문명을 정복하기 위해 동원한 군인은 고작 500명에 불과했다. 당시 멕시코 내의 토착 원주민은 1518년 3,0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코르테스의 정복 이후 유럽인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질병(주로 천연두, 홍역, 발진티푸스)을 전염시킨 이후 50년이 정도의 시간이 흐른 1568년에는 원주민 인구는 3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무려 90%의 인구가 사라졌다(인구 통계는 연구자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음). 르 롸 라둬리(Emmanuel Le Roy Ladurie)는 아메리카의 이런 상황을 “세균성 대량 학살의 가마솥”이라고 불렀다. 유럽인의 전염병 전파가 고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총과 칼 대신에 전염병이 대신 싸워주었다. 순식간에 찬란했던 아메리카 문명이 소멸되고 말았다.       


안데스 문명의 잉카 제국 역시 천연두로 멸망하게 된다. 1531년 스페인 프란시스코 피사로(1475-1541)는 168명의 군대로 잉카 제국의 8만 군대를 무너뜨렸다. 산술적으로 보았을 때 스페인군이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복병은 천연두였다. 바이러스 항체로 무장한 백여 명의 군대가 항체가 없는 수만 명의 원주민 군대를 이겼다. 면역체와 비 면역체 간의 전쟁에서 면역체가 승리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뿐 아니라 아메리카 야생의 동식물조차도 고도의 진화과정을 거친 유럽이나 아프리카산과 경쟁해서 살아남은 종이 거의 없었다. 적자생존과 자연도태의 법칙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역시 세균과 바이러스 전염으로 거의 모든 인구가 사라졌다. 1620년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청교도 순례단이 도착하기 직전 그곳의 원주민이 전염병으로 절멸했다. 현지 총독은 “원주민들은 천연두로 모두 사망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소유하는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권한을 천명한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동시대 지배계층의 종교관이고 지독한 인종차별이다. 인간에 대한 존엄과 생명에 대한 연민은 찾아볼 수 없다.      


영화 ‘컨테이전(2011)’은 요즘 <코로나 19>와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홍콩에 출장을 다녀온 미국인이 고열로 시달리다 사망하고 전염된 아들이 죽게 되면서 병의 원인을 파헤치게 된다. 역학 조사 결과 홍콩의 음식점이 발원지였는데 요리사가 야생 박쥐 변을 먹은 돼지를 맨손으로 다루면서 전염이 시작된 것이다. 동물과 식물은 인간과 함께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한다. 인류가 전염병에 노출되기 시작한 때는 농사를 지으면서 정주(定住) 생활을 할 때부터다. 인구가 집중되는 대도시일수록 세균과 바이러스가 창궐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세균과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잠시 물러나기는 해도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다. 혹자는 After Corona 시대는 오지 않고 ‘코로나와 함께 하는 시대(With Corona, WC)’가 전개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코로나 19는 감기와 독감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인류 역사는 숱한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와 저력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인류 역사는 고난과 위기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고 이보다 훨씬 더한 것도 이겨냈다. 코로나 역시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McNeill, W. H. (1998). Plagues and peoples. 김우영 역(2020). 전염병의 세계사. 서울: 이산. 

Watts, Sheldon (1997). Epidemics and history. 태경섭, 한창호 역(2009). 전염병과 역사. 서울: 모티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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