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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3. 2020

전염병의 역사 ③

인류의 대응

지금까지 2회에 걸쳐 전염병(특히 페스트)의 발병 원인과 인류 역사의 의미, 유럽인에 의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염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인류는 전염병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가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하나는 제도적인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관습적인 행동에 관한 것이다.      


제도적 측면에서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격리 검역소 설치다. 공항에서 항공기를 탑승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출입국 절차 중에 검역(quarantine)을 거쳐야 한다. 검역을 의미하는 ‘quarantine’의 어원은 이탈리어(quaranta)로 숫자 ‘forty(40)’을 뜻하는데 유럽의 페스트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중세 유럽에서 국가 간 인적·물적 교류는 주로 선박을 이용하였는데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항구에 쿼런틴을 설치했다. 1465년 아드리아해 항구도시 라구사, 1485년 베네치아를 시작으로 페스트 감염이 의심되는 항구로부터 도착한 배는 모두 격리된 장소에 닻을 내리고 40일 동안 육지와 접촉할 수 없었다. 페스트 발병 원인이 쥐와 벼룩이라는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40일 정도 격리시키면 감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둘째, 이동을 위한 통행권 발급이다.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증명을 할 때 출입이 허용된다. 요즘 해외에 나갈 때 방문국에서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같은 이치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도시 간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본 거주 지역에서 위생을 보증하는 ‘통행권’을 발급받도록 했다. 또 흥미로운 점은 감염자가 집에서 오랫동안 격리되어 답답할 때 보균자임을 식별하는 지팡이를 가지고 집 밖으로 외출하여 바람을 쐴 수 있도록 했다. 보건 위생 지식이 부족한 중세인들이 환자에게 배려 아닌 배려를 한 조치다. 현대판 지팡이는 전자발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환자 수용소 설립이다. 금년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이탈리아는 코로나 감염자와 사망자가 유달리 많이 발생했고, 이탈리아 정부의 방역 및 치료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탈리아는 전염병에 관한 한 선도적으로 다양한 제도를 수립, 시행한 국가다. 예를 들어, 제노바에서는 페스트 환자 수용소를 처음으로 설립했다. 물론 페스트가 발생하고 100년이 넘은 시점이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환자와 의심환자를 한 곳에 모아놓았지만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곳은 거의 시체안치소나 다름없었다.

        

네 번째, 지역 봉쇄 조치다. 전염병이 없는 청정지역과 오염된 지역의 육로를 엄격하게 통제하여 전염병의 이동경로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방역의 마지노선을 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14세기 말 밀라노, 피렌체가 군대를 동원하여 도시 봉쇄를 강행했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17세기 말에 육로를 봉쇄하였다. 얼마 전 국경을 제 집 드나들 듯이 했던 유럽에서도 코로나가 발병했을 때 국가 간에 봉쇄 조치를 취했는데, 중세 도시의 봉쇄 조치를 떠오르게 한다.

      

각 민족들의 전통적인 습속이 전염병과 어떤 역학적인 관계를 맺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첫째, 만주의 유목민은 마멋(대형 설치류)을 조상과 동격으로 취급하고 특별히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마멋은 페스트 보균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덫을 놓아 마멋을 잡는 것을 금기시했고 반드시 사살을 원칙으로 삼았다. 혹시 마멋 집단이 병이 걸리면 천막을 걷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는데, 결국 이런 습속이 페스트 감염을 예방할 수 있었다. 둘째, 말레이시아 플랜테이션에 일하는 남인도 출신 타밀 노동자들의 습속도 특이하다. 물은 하루에 한 번만 집안에 들여야 하며 실내에 물을 저장해두어서는 안 된다. 이런 습속은 모기가 실내에서 알을 낳아 번식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타밀족은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다른 민족에 비해 뎅그열이나 말라리아에 감염되는 경우가 훨씬 적었다. 이와는 반대로 전염병의 감염을 촉진시키는 습속도 있다. 예를 들어, 예멘에 있는 이슬람교 사원에는 세정식을 위한 목욕탕이 있는데 주혈흡충이 득실거렸다. 종교적인 순례 또한 전염병을 퍼뜨리는 주요인이다. 열병 환자에게 널리 행해져 온 사혈(瀉血)도 환자에게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전염병의 역학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행태를 볼 수 있다. 제도가 효과를 볼 때도 있었고, 전통적인 습속들이 전염병에 비켜가기도 했다. 최근 몽골에서 마멋을 먹고 페스트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인간이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포식자이지만 그렇다고 무엇이든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태계에 대한 최소한의 금도(襟度)를 지켜야 하고,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      


전염병은 유쾌한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3회에 걸쳐 생각을 나누었다. 중세에도 현대처럼 과학적이지는 않았지만 전염병을 퇴치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역 조치들을 제도화하여 시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격리 검역소 설치, 이동용 통행권 발급, 환자 수용소 설립, 지역 봉쇄 조치 등은 형식과 내용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오늘날에도 전승되어 활용되고 있다. 연암 박지원을 떠올린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변통할 줄 알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어 하루빨리 전염병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McNeill, W. H. (1998). Plagues and peoples. 김우영 역(2020). 전염병의 세계사. 이산. 

Watts, Sheldon (1997). Epidemics and history. 태경섭, 한창호 역(2009). 전염병과 역사. 모티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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