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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3. 2020

인간은 왜 권위에 복종하는가?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년)>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를 제기하였다. 2차 대전의 전범 피의자 아이히만의 재판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법정에서 재판받는 아이히만을 지켜본 사람들은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전범 정도라면 가학적인 괴물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는 단지 생각 없는 평범한 관료에 가까웠다. 그저 상관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였을 뿐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까지 했다. 그가 특별히 공격적이거나 가학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악의 화신(化身)이 되었을까?   

          

평범한 인간이 왜 권위에 복종하면서 악의 화신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심리 실험이 있다. 이 연구는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기 위해 시행된 많은 연구들 중 가장 기념비적인 연구다.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권위에 복종(obedience to authority)' 연구. 밀그램은 ‘기억과 학습 연구를 위한 피험자 구함’이라는 광고를 지역신문에 내 피험자를 모집했다. 실험 방식은 간단하다. 피험자(가해자)가 학습자(희생자)에게 단어 쌍을 읽어준다. {파란 상자, 좋은 날씨, 야생 오리 등등}. 그런 다음 평가할 단어를 읽어준다. {파랑-하늘, 잉크, 상자, 램프}. 학습자는 네 개의 낱말 중에서 그 첫 번째 단어와 원래 쌍을 이룬 낱말을 찾아내야 한다.          

 

이 실험에서 핵심은 실험자(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권위자)의 명령이다. 실험자는 피험자에게 “학습자가 잘못된 응답을 할 때마다 전기충격기의 수준을 한 단계씩 높이시오”라는 지시를 내린다. 충격기의 계기판 위에는 15 볼트에서 450 볼트까지 무려 30단계의 스위치가 있다. 각 단계마다 15 볼트의 전기가 더해진다(전기충격의 강도를 높일 때마다 피험자는 실험자에게 지속 여부를 묻고 승낙을 받아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절차는 가상으로 진행된다(전기 충격에 대한 음성도 녹음된 것이다).        

   연구결과는 한 마디로 충격적이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피험자는 실험자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학습자에게 단어 쌍을 정확히 발음하고 조심스럽게 스위치를 누르는 절차에만 몰입했다. 그들은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정확히 이행하는 것에만 관심을 둘 뿐 도덕적인 판단은 하지 않았다. 실험 후 인터뷰에서 피험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혼자였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돈을 받고 이 일을 했을 뿐이다. 나는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모든 책임을 명령을 내린 실험자(권위자)에게 돌렸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다. 익숙한 변명이다.

        

이 실험의 관찰자로서 개인은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 따라 실험자에게 철저히 복종한 피험자들의 행동을 비난할 수 있다. 관찰자의 입장과 피험자의 입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누구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높은 수준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을 실천할 것이라고 확언할 수 없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한 가지 덧붙일 결과는 피험자 중에는 전기충격 단계가 올라가면서 중간에 실험을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포기의 이유는 권위에 대한 복종을 기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습자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면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인간의 이중성에 실망할 때가 많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다. 명망 높은 의사 지킬 박사와 추악한 악인 하이드처럼 말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많은 가설과 연구 결과가 있지만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것 같다. 환경에 민감한 인간을 수국(水菊)에 비유해본다. 수국은 토양의 성분에 따라 꽃 색깔이 달라진다.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분홍색을, 산성 토양에서는 보라색으로 나타난다.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맹모삼천지교를 다시 생각해본다.                     

Milgram, Stanley (1974). Obedience to authority. 정태연 역(2009). 권위에 대한 복종. 서울: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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