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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Nov 07. 2020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미국만의 문제인가?

미국 대통령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되고 대통령은 1회 연임이 가능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3회 연임을 금지했다. 대부분 현직 대통령은 프리미엄을 살려 연임에 성공했다. 역사적으로 연임에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은 포드, 카터, 아버지 부시 정도다.


2020년 11월 3일 실시된 대선은 역대급으로 논란이 많다. 미국 민주주의의 꽃은 승복(concession)의 문화다. 패자가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2000년 12월 아들 부시와 대결에서 패배를 선언한 고어 부통령의 모습이 선하다. "이제는 하나로 뭉치자!" 대선 과정에서 분열된 민심의 상처도 시간과 함께 아문다.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도 각자의 생활공간으로 돌아가고 평상을 되찾게 된다. 결과에 대한 승복은 국가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고 정치인의 룰이다. 그것도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민주주의는 기회 앞에서는 공평하기 때문에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1860년 대선에서 아브라함 링컨과 대결하여 패했던 스티븐 더글라스 후보의 이야기다. 대선에서 노예제 폐지를 내건 에이브러햄 링컨이 승리하자,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 후보는 “모든 당파적 이해를 내려놓자”며 승복을 선언했다. 그는 남부에 가서는 딴 이야기를 했다. 남부 지지층을 향해 “링컨 대통령의 취임이라는 모욕을 받아들이지 말자”라고 했다. 분열과 불복의 메시지는 남북전쟁이란 내전의 원인이 되었다. 더글라스는 워싱턴에서는 패배를 승복하는 연설을 했지만, 노예제를 찬성하는 남부로 돌아가서는 분열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정치인의 한 마디는 수백만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4년 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만 해도 기성 정치의 '이단아'로 받아들이고 그의 기행과 궤변과 독선을 견뎠다. 분열과 파당 정치에 염증이 난 국민에게는 사이다와 같은 행보였다. 'America First'는 민주당도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내심 바라던 점도 있었다. 특히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는 트럼프식 정치가 통했다. 상대의 치부를 들춰내고 치고 빠지는 그의 정치술은 주전공이다. 부동산 비즈니스에서 갈고닦은 노련한 상술이다.


4년 임기를 거의 마친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의 악성 종양으로 등장했다. 예고된 중병이다. 그가 집권한 지난 4년을 돌아보면 미국 사회는 과거의 미국이 아니었다. 비정상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보였다. 이념, 정파, 당파, 연령, 지역, 인종, 종교 등 갈기갈기 찢겼다. 광활한 국토가 증오와 분노로 채워진 공간으로 돌변했다. 종양이 온몸으로 전이되어 다른 장기를 망치듯, 미국 사회 곳곳에 침투하였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출국이다. 지금은 반대로 수입국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한다.


미국 사회를 소송 사회(litigious society)로 규정한다. 툭하면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다. 오죽하면 변호사와 친구 하지 말라고 한다. 변호사가 수임료가 적어지면 친구를 유혹해 소송을 걸게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대선 경합 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애리조나 주 등은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트림프는 무더기로 소송을 제기했다. 예정된 수순이지만 설마 했다. 아무리 트럼프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승복의 전통을 지킬 줄 알았다. 대통령의 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미국은 주권(州權)을 존중하는 연방이다. 연방 대통령은 합중국을 대표한다. 합중국은 50개 개별 주(州)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과 특수성을 존중하면서 유지된다. 대선에 따른 투표도 주법에 명시되어 있다. 주민(州民)은 주법에 따라 투표한다. 투표는 민심이고 민심은 정치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트럼프는 연방대법원을 믿는 것 같다. 최근 대법원 판사들의 성향은 보수 쪽으로 기울었다. 트럼프는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긴즈버그(RBG)의 자리를 보수성향의 베넷 판사로 채웠다. 대선 결과 불복 시나리오에 따라 대법원에 유리한 진영을 갖췄다. 권력의 사유화다. 권력의 사유화는 민주주의의 최대 적이다.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은 3권 분립이다. 입법, 사법, 행정이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을 이뤄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가 유지된다. 미국 민주주의 위기의 단초는 견제와 균형의 역학구도가 예전만큼 작동하지 않는데서 찾을 수 있다. 입법부는 철저히 파당적이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국익에 관한 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논쟁을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던 전통이 퇴색하고 있다. 사법부 역시 정치가 덮었다. 진영논리에 따라 판결을 예상할 수 있다. 행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고 상징한다. 통합의 구심점이다. 분열을 치유하고 화합을 위해 밤낮을 뛰어다녀도 시원찮을 판에 분열을 부추기고 선동을 일삼는다.


전 세계가 대선 결과를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고 있다. 한쪽에선 투개표의 불법과 부정을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집무실에서 끄집어내겠다고 한다. 한참 후진국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 쏟아지는 곳이 바로 미국의 현재 모습이다. 미국 민주주의 위기는 문명사적 위기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능하지만, 그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능하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권력은 권력자의 사유물이 아니다. 그러면 일당독재국가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그 권력은 국민의 행복을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 최근 미국인 중에는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위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잠복되어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지도자를 뽑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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